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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다섯 번째 이야기)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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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다섯 번째 이야기)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다.
  • 윤온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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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아요.. "

 

< 출처 / 픽사베이 >

어느 한 선생님의 상담 내용이었다.


 "어떤 아이를 말하나요?"라고 묻자

"아니요, 제가요."

라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만19세,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자마자, 보조 교사부터 일하면서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아가던 "선생님"의 자리에 있었던 나로서, 그 선생님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어떤 대답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성장한 모습에 서로가 기뻐하고 후에 아이들이 자라 나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 그 어떤 행복과 성취감보다 큰 보람을 느꼈던 그 자리,

'선생님'이라는 것만으로 행복했으면 하지만, 사회는 그것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은 보육교사들의 질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교육자의 자리에 있는 부모님들이 오히려 더 많이 고민하며 상담했던 질문들이었다.

결국 "교육자"의 자리에 선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같은 마음으로 고민하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가 어려우면서도 너무나 값진 이유는, 우리가 이미 살아온 지난 날인 유아유치 시절을 다시 보며 그들의 시간에 내가 하지 못했던, 또 내가 하고 싶었던 여러 꿈을 대신 이루어갈 수 있도록 도우며, 키워가면서, 지나가 버린 그 시간의 감사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픽사베이 >

정말이지, 유아유치 시절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함께하는 것은 매우 행복하고 흥분되는 일이다.

특히 영아에서부터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대리자로서 아이들의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신비하며 감동이 되는 일이다.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모습 말고도 원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에는 부모님도, 선생님도 한마음으로 서로 놀라며, 기쁘기도 하면서 때론 너무 빨리 자라버려 섭섭하기도 할 만큼 가슴 벅찬 감동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 기쁨과 희열과 감사와 감동, 그리고 시원섭섭한 부모님과 양육자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때론 조력자로, 경쟁자로 함께했던 따뜻한 교사와 부모의 교육자 자리가,
이제는 어떠한 사회적 문제와 이슈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조심하고 경계하며 '적당한 선'을 그어야 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사랑한다 해도 사랑한다. 표현하기 어렵고, 정말 잘못된 부분은 고쳐주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함에도 그것이 문제 될까, 혹은 자신에게 책임을 되묻진 않을까 염려되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한다.
또 이런 상황을 학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교사"로 오인될 것 같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모 또한 교사에게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어도, "까다로운 부모"로 오해할 것 같아 편안하게 소통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정말  좋은 교사, 훌륭한 선생님들,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좋은 기관도 많은 데 부정적인 한 번의 기사로 마치 아이들을 학대하는 교사, 기관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사회적 시선에 신경 쓰다 보니 부모님과 마음껏 대화하고 싶어도 혹 말실수로 오해받지 않을까 고민하여 대화가 원활히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상담을 요청받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사방에 막혀있는 것 같아, 숨을 쉬지 못할 것 같다며 내가 교육자가 맞는지, 이렇게 적당히 있으면 되는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며
결국 그것이 "자존감"으로 연결되었고, 이를 고민하는 교사와 부모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나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그 부분 속에 우리는 진실을 보면 된다.
그런 부분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마음 다해 해왔던 헌신들은 교사도, 부모도 함께 서로에게 가장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큰 선물이 된다.

우리를 보는 외부적인 요소가 우리의 진심 어린 교육의 노력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육자들은 자기 자신이 직접 맞닥뜨린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심과 오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압박으로 인해 "자존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비단 교사에게만 생기는 일은 아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양육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만만할 수만은 없다.

< 출처 / 픽사베이 >

 

우리는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이슈에 나도 모르게 그들의 기준안에서 양육해야만 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있어서
한 사람의 인생의 기초를 만드는 유아유치 시절의 양육자, 교육자는 모두 어떤 부분에 같은 "양육 고민, 지도 고민, 교육 고민" 속에 한 번쯤은 "자존감 하락"의 문제를 겪기 때문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양육자의 자존감의 높낮이가 비단 외부에서 주는 압박의 문제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노력이, 교육이 아이에게 적절한지, 그것이 아이의 바른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위로받아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비난받으면 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존감의 본질적 회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이 교육의 자리에 왜 있는지 본질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자리인지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내 안에서 교육자가 지녀야 할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자존감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노벨상의 80%를 받은 유대인들이 아이들이 태어나면 보게 하는 의무적인 서적이 바로 토라, 탈무드, 성경이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적이기 때문이다.

그 탈무드에서 교육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내심 없이는 절대 남을 가르칠 수 없다. "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교육할 수 있음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인내심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하는 만큼 항상 아이들을 위해 배우고자 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교사, 혹은 부모가 가장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몇천 년을 아우르며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준 스테디셀러,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일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우리의 가르침 속에 늙어도 아이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아이들의 미래에 남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하는 교육의 일에서 힘들 때,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명언의 주인공으로, 1867년 영국의 제2차 선거법 개정을 하여 농민과 노동자에게도 고루 선거권을 주었던,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제1대 비컨즈필드 백작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봉사는 하나의 행위나 단 한 가지 실수로도 없어질 수 없다."
난 이 위대한 봉사 중의 봉사는 이 시대를 이끌어나갈 "아이들의 미래"를 만드는 교육이라 생각한다.

 

< 출처 / 픽사베이 >

 

그리고, 그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와 부모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팀이자 경쟁자이다. 아이를 위해 하나 되고, 아이를 위해 서로 견제하며 도전하고, 서로에게 둘도 없이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선의의 교육적 경쟁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동역자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을 만들어가는 교육자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인생을 위해 지금을 준비해가는 교육자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한다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며, 아이들을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언어로 자존감 떨어뜨리는 시대에, 이제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서 위대한 봉사를 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큰 울타리가 되어주자.

서로를 존중하고 위로하며,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담아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의 그 위대한 봉사에 감사하자.
위대한 봉사는 어떠한 작은 실수나 문제로 없어질 수 없다.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위해 걸어왔고, 걸어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그 위대한 봉사는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그들의 기준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 자신이, 부모 스스로가 마음속에서부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한다면,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고 찢기는 자존감이 아니라,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자존감으로 아이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말을 맺으면서, 다시 한번 더 말해주고 싶다.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말은 다른 말로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은, 언제나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가장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혹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아니면 어떡하지?"라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당신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은 선생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당신과 가장 좋은 팀이었던 부모의 가슴에도 가장 훌륭한 교사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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