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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여섯 번째 이야기) 그럴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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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여섯 번째 이야기) 그럴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 윤온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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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가 너무 심각해서, 우리 아이가 닮을까 걱정 돼요."

<출처 / 픽사베이>

한 어머님이 깊이 걱정하며 물어본다.
저 아이가 자꾸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옆 친구를 괴롭히고, 방해하는데 우리 아이가 닮을까 걱정된다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언어가 느린 것 같다며,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으니 우리 아이랑 함께 있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건의하였다.

그 아이는 다문화 아이였고,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문제로 아이 자신도 정서적 갈등과 불안함이 있는 상태인데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당연히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신체적으로 공격적 태도가 먼저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당연히 다른 아이 어머니 입장에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자녀가 그 아이의 이름을 대며 교육기관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니 더더욱 불안은 가중되는 것이었다.

<출처 / 픽사베이>

"우리 기관의 가치관은 사랑받는 아이, 사랑 주는 아이지요?"
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네, 그렇죠."

"그런데 제가 이 아이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말을 잘 알아듣고 다른 친구를 괴롭히지 않으니 사랑하고, 저 아이는 다른 친구를 괴롭히고, 문화가 다르고, 방해하니 사랑받기에는 자격이 안돼 다른 곳으로 가거나 혼자 있어야 하겠다는 결론을 만든다면, 저는 그 가치관을 위배하는 것이 됩니다."

"그 아이 부모님과 저와 선생님에게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2주간 그 아이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 아이의 공격성의 횟수를 점검하여 빈도수에 따라 실수인지, 고의적인지를 분석하여 아이 부모님께 정중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날 아이 부모님과 선생님께 각각 미션을 주었다.

<출처 / 픽사베이>

아이 부모님께는 집에서 아이에게 하루 3번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아이에게 자신의 나라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아이에게 한국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그리고 선생님께도 기관에 들어오면 아이에게 하루 3번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아이에게 교실 친구들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아이와 친해지는 친구 만들어주기. 이런 미션을 드렸다.

그렇게 1주간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자 생활하는 곳에서 공격성이 얼마나 나타나는지 표를 만들어 주어 점검하게 하였다.

되도록 모든 미션을 수행할 때는 아이의 눈을 보고,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따뜻하게 대할 수 있도록 진행하였고, 아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때 기다려 주도록 부탁하였다.

또한, 아이가 선택한 놀이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아이들에게 이 아이의 나라에 대해 이해시키고 함께 그 나라에 대해 놀이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아이의 수준에 맞게 조절하여 확장된 프로그램으로 놀이할 수 있도록 전개하였다.

우리나라는 누리과정과 표준보육 과정에 맞게 활동하도록 장려하는데, 특히 다문화 아이들이 많은 지역의 기관들은 다문화 아이들의 연령이 기존 아이들과는 조금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수준을 조절하도록 계획하여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도 각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특성 중 다문화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는 배려하는 활동을 계획하도록 독려해 줄 필요가 있다. 선생님들이 많은 아이 가운데 다문화 아이들을 파악하고 함께 교육하는 부분이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다문화 아이들을 담당하는 자체에서부터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더 격려하고 응원하며 칭찬하고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출처 / 픽사베이>

각각의 미션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 아이에게 적용되는 이 기간을 "성장 기간"이라 불렀다.
이 아이가 고의로 당연한 듯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수정하거나 고쳐주는 기간이 아닌, 아이들이 가진 주어진 각자의 외부적 환경으로 인해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들을 분석하고,
그것의 원인 중 외부적 환경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여 아이의 내부적 요인을 발견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아이와 가정을 위한 "성장 기간"인 것이다.

"성장 기간"에는 "성장통"이 반드시 있다.
우리가 자라면서 키가 급속도로 크거나, 갑자기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사춘기 시절에는 성장통을 겪게 된다.
이것은 급속도로 우리의 몸에 성장호르몬이 발달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당연한 과정이다.
아프지만, 발전해가는 과정에 겪어야 하는 필수적 요소이다.

신체의 성장 과정에서도 성장통을 겪듯이, 아이들의 정신적, 영적인 성장에도 성장통은 필요하다.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에는 반드시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나 만난 첫 번째 공동체인 "가정, 위탁 기관, 대리양육자" 등이 그 성장의 배경적 역할을 하므로 그 양육자들도 함께 성장통을 겪으며 서로를 위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서적 성장에는 아이와 가정, 그리고 대리양육자가 함께 성장통을 겪는 것에 대하여 이상하다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이 성장통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시켜야 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아이에게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줄일 수 있고, 부모에게는 아이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교사에게는 아이를 변화시키는 성취감을 줄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아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타인에게도 기관과 부모의 노력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아이 자신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기관은 아이의 성장 기간을 건의한 부모에게 제안하였고, 감히 그 부모님이 함께 기다려 줄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아이"를 위해 "아이"를 생각하고 "아이"를 믿고 맡길 기관을 찾아왔던 부모들은 아이들의 변화를 진정으로 도우려고 하는 중심에 불안할 수 있을 텐데도, 앞서 걱정하며 왔던 얼굴과는 다르게 흔쾌히 그 아이의 변화에 대해 기대하고 오히려 기관에서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며 응원하고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교육자로서, 아이 중심으로 교육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주간을 먼저 마무리하면서 다문화 아이의 부모와 교사와 중간 점검을 하였다.
의외의 반응이었다며 걱정하셨다.
오히려 아이가 더 불안해하는 것 같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집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엄마 옆에만 붙어 다닌다 하였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자신을 뚫어지라 보고, 다른 곳을 갔다 왔다 한다며 왜 그런지 궁금해했다.

두 번째 교사는 오히려 반대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친구를 맺어주려고 하니 아이들을 피하고 공격적이던 아이가 오히려 아이들이 도와주려 하면 울고,
도망가다가 3일째부터는 점차 아이들이 도와주면 같이 기다렸다가 하고,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도 하며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 전에 없던 적극적 참여 태도를 보인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도 너무나 놀라서 감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엄마에게는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안 하던 모습을 봐서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러나, 적응이 안 돼서 그래요."

교사에게도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선생님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아서 신뢰가 생긴 것 같아요."

두 분에게 다시 2주 차를 시작하자 하였다.

2주 차 후에 처음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던 어머님이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고, 기관으로 와서 직접 보시라고 답했다.
직접 보신 어머니는 너무나 놀라 아이에게 고맙다고 하였다.

그 아이가 자신의 이름과 사랑해라는 말을 적어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부모와 선생님의 합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변할 것을 기다려준 그 교실의 다른 아이들까지 공동작품이 된 것이다.

건의했던 어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받은 아이는 진짜 사랑을 줄 수 있네요. 우리 아이가 이것을 배울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어머니께 다시 말씀드렸다.

"이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변화될 때까지 어머님의 자녀가 기다릴 수 있도록 교육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픽사베이>

 

우리 앞에는 어떤 아이들이 올지 모른다.
우리 앞에는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올 수 있으며,
또 내 아이도 다른 아이들 앞에 어떤 아이로 설지 모른다.

내가 보는 내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고 멋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보는 내 아이는 걱정스럽고 염려되는 아이로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우리 앞에 그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여 우리 앞에 서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걱정했던 그 아이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있을지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 아이는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고쳐줄 수 있을까?

<출처 / 픽사베이>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 앞에 놓인 누군가의 아이는 사랑받기 위한 존재로 태어났다.
물론, 모두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고,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상대적 사랑을 하고 있기에 보편적으로 공평하게 사랑할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다.
소통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모두 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된다.
다문화 아이는 다른 나라 아이니까,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가면 "한국 사람이니까"라고 나름의 이해로 인정받지만,
딱히 그것이 좋은 의미일 수도, 부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라는 것을 사람들이 나라의 격차로 우리를 이해했을 때 인간 본연의 존엄성이 아닌, 나라 간 문화 차이를 기준으로 하여 그것이 오히려 이면적인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르다"라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 대해 본질적인 이해가 필요할 수 있겠다.

다른 문화권은 나라 간, 지역 간, 경제적 수준, 문화 경험의 차이 등이, 다 다른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에서 우리는 "다르다"를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은 내 아이도 다른 누군가에게 "다른 아이"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 존중받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다른 환경" 속에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 자신도 모르게 정체성이 되어 자기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그 모습이 외부에서 정하는 기준에 도달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개인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어릴 때 사람들이 나를 보는 느낌, 자신의 잣대로 판단했던 그들의 눈빛, 그것을 느꼈던 나의 감정을 생각하며, 우리가 혹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진 않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했던 그 모습을 내가 혹시 하고 있진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 후에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서로 하나 되어 아이들이 마음껏 서로 웃고, 경계선이 없이 서로를 이해하며 공동체 생활 속에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지 함께 고민해보자.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으로 고민하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내 아이 주변에 어려운 아이가 있는가?
그 아이는 그럴 수 있고, 우리 아이도 그럴 수 있다.

그 어려운 아이를 도울 지금이 바로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줄 최고의 기회이다.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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