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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이지선 칼럼] 나 피카소, 이 와인 2병만 주면 그림을 그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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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이지선 칼럼] 나 피카소, 이 와인 2병만 주면 그림을 그려주지
  • 이지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2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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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도 최고의 와인, 샤또 무통 로칠드의 숨겨진 이야기

 와인 종주국 프랑스의 대표 산지 보르도 Bordeaux. 생애 처음 와인을 구매하러 갔을 때 망설임 없이 보르도 와인을 집어 들었던 나, 그 때의 나도 보르도라는 이름을 어디서 듣긴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와인에 친숙하지 않은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보르도는 타 산지보다는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보르도는 우리나라의 시나 구가 더 작은 동으로 나뉘듯이 여러 지역으로 잘게 찢어진다. 메독 MEDOC, 그라브 GRAVES, 소테른 SAUTERNES, 엉트르 두 메르 ENTRE DEUX MERS, 리부르네 LIBOURNAIS 등 와인애호가라면 손뼉을 치며 맞이할 와인 산지들이다. 이 중 보르도를 세계 최고의 레드와인 산지로 만들어 준 곳이 바로 메독이다. 

메독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와인이 태동한 곳이며 이 두 품종과 다른 3~4가지 품종까지 잘 섞어 하나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이것을 우리는 보르도 블렌딩 와인이라 부르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칠레 등 모든 와인 산지에서 벤치마킹이 되어 가장 대표적인 와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출처/소디뱅
▲와인등급표 (출처/소디뱅)

 

메독에는 1855년 와인을 등급별로 분류한 그랑크뤼 클라쎄 Grand Cru Classe 라는 와인등급제도가 있다. 1등급(PREMIERS CRUS)부터 5등급(QUATRIÈMES CRUS)으로 와인을 등급화했는데 1등급에 속하는 와인은 단 5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시작은 4개의 와인뿐이었다.

 

▲메독 1등급 5대 샤또 (출처/디캔터)
▲메독 1등급 5대 샤또 (출처/디캔터)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라뚜르, 샤또 마고, 샤또 오브리옹이 1등급으로 존재했으며 1855년 이래로 이 등급제도에는 단단한 철벽이 쳐져 있어 등급이 변경된 경우가 없었는데 예외적인 와인이 존재한다. 바로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한 ‘샤또 무통 로칠드’ 이다.

샤또 무통 로칠드는 많은 스토리가 담긴 와인이다. 메독 중 포이약 Pauillac이라는 최고의 산지에서 생산되며 로칠드 Rothschild 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전 세계 부의 40%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소유한 와이너리다. 힐튼 가의 패리스 힐튼의 동생이기도 한 니키 힐튼이 로스차일드 가문과 혼인을 했으니 더 견고한 동맹이 만들어 졌을 테다. 

무통 로칠드는 처음 등급이 정해질 때 2등급을 받았다. 등급을 매길 때 가장 주요 척도가 된 것은 시장의 유통가격이었는데 무통 로칠드 역시 라필드 로칠드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국인에게 최근에 판매되었단 이유로 1등급이 되는 영광은 누리지 못했고 소유주인 바론 필립 로칠드는 "말도 안되는 부당함 the monstrous injustice" 이라며 분해했다. 

바론 필립 로칠드가 20년 동안 1855년 굳어진 체계를 무너뜨리려 발버둥 쳤으나 같은 가문의 1등급 와이너리 역시 침묵했고 오히려 경쟁상대로 여겨 권력 다툼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무통은 2등급으로 약 120여 년을 머물다가 1973년 드디어 1등급으로 승격된다. 

 

▲샤또 무통 로칠드 1973빈티지 레이블 (출처/샤또 무통 로칠드 공식 홈페이지)
▲샤또 무통 로칠드 1973빈티지 레이블 (출처/샤또 무통 로칠드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역사적인 1973년 이후 기존의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에 새겨져 있던 아래의 문구는

“1등급은 될 수 없었지만 2등급이 아니다. 그저 무통이다. Premier ne puis, second ne daigne, Mouton suis.”

다음과 같이 바뀌어 적히게 된다. 

“나는 1등급이다. 나는 2등급이었다.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 Premier je suis, Second je fus, Mouton ne change.”

이 문구가 가장 먼저 새겨진 1등급이 된 해의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으로 채워졌다. 1973년은 무통 로칠드에게도 뜻깊은 해였지만 피카소가 타계한 해이기도 하다. 피카소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거장들은 한 번씩 이곳의 레이블을 거쳐갔는데, 무통 로칠드의 가장 매력적이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 와인의 레이블이다.

 

▲예술가들이 장식한 레이블들(출처/소더비)
▲예술가들이 장식한 레이블들(출처/소더비)

 

미로, 샤갈, 칸딘스키, 베이컨, 달리, 장 콕토, 키스 해링, 앤디 워홀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딱 벌어질 세기의 예술가들이 매 빈티지 마다 자신이 그린 레이블이 붙은 빈티지의 무통 1병과 다른 빈티지 1병만을 받고 기꺼이 레이블에 자신들의 작품을 실었다. 

 

▲마스터 소믈리에 페르난도 베테타 블로그
▲예술가들이 장식한 레이블 (출처/마스터 소믈리에 페르난도 베테타 블로그)
▲마스터 소믈리에 페르난도 베테타 블로그
▲예술가들이 장식한 레이블 (출처/마스터 소믈리에 페르난도 베테타 블로그)

 

무통은 ‘라벨로 보는 명화’라는 주제로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해 라벨과 와인의 예술세계를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 예술적인 레이블에는 재미난 일화들이 많은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발투스 Balthus가 그린 1993년의 작품이다.

 

▲논란이 많았던 1993 빈티지 오리지날 레이블과 변경된 레이블(출처/르돔뒤뱅)
▲논란이 많았던 1993 빈티지 오리지날 레이블과 변경된 레이블(출처/르돔뒤뱅)

 

사춘기도 되기 전의 십 대 소녀의 나체를 순수하면서도 도발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미국에 수출되기 전 큰 문제가 되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배경색만으로 채워진 레이블로 변경된다. 덕분에 발투스가 그린 오리지널 레이블이 붙은 와인이 희소해지자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투기가 일어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샤또 무통 로칠드 2013 빈티지 (출처/샤또무통로칠드 공식 홈페이지)
▲샤또 무통 로칠드 2013 빈티지 (출처/샤또 무통 로칠드 공식 홈페이지)

 

2013년 드디어 한국의 화가가 레이블을 장식하게 된다. 이우환 화백은 보랏빛의 와인이 점차 숙성되며 깊은 붉은색을 머금게 되는 와인의 색을 표현했다.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화가가 세계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최고의 와인의 레이블을 장식했다는 사실이 아주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2013년의 무통 로칠드를 접할 때 2019년, 2029년 마시는 시기에 따라 저 다채로운 색들만큼 다채로운 와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을 상상만 해도 설레어 온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013년이 보르도의 최근 20년 동안 가장 빈티지 점수가 낮은 해였던 것이다. 그러나, 와인은 절대로 점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2013년 무통 로칠드에는 2013년 힘겹게 자라난 포도들의, 자연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다. 

 

▲미국의 오퍼스원과 칠레의 알마비바 (출처/뱅팽)
▲미국의 오퍼스원 (출처/뱅팽)

 

또한, 무통 로칠드는 신세계 와이너리와 다양한 협업을 이뤄냈는데 그 협업이 가히 업적이라 할 만큼 좋은 와인들을 많이 생산했다.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와 손잡고 최초로 만들어 낸 보르도 블렌딩 와인, ‘오퍼스 원’. 미국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기도 하며 미국 와인의 선구자인 로버트 몬다비와 손을 잡았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 와인을 좋아하던 국내 유명 아이돌은 자신들의 노래에 가사로 오퍼스 원을 언급하며 애정을 보여줬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더 이상 쉽게 이름을 거론할 수 있는 그룹이 아니게 되어 아쉽다.

 

▲미국의 오퍼스원과 칠레의 알마비바 (출처/뱅팽)
▲칠레의 알마비바 (출처/뱅팽)

 

칠레 최고의 와인회사 중 한 곳인 ‘콘차이 토로’와 손을 잡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 이름을 딴 ‘알마비바’라는 와인을 생산하며 칠레 와인계의 또 다른 프리미엄 와인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와인인 무통 로칠드.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이름이 전해질 거장 예술가들의 축복을 받으며 탄생하는 이 와인 한 병이 과연 단순히, 술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무통 로칠드는 심미안과 세상 가장 향기로운 향과 맛으로 나의 미각을 깨워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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