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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이지선 칼럼] 왕들의 은밀한 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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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이지선 칼럼] 왕들의 은밀한 와인들
  • 이지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20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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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15세부터 영국 로얄 패밀리-왕세손의 와인까지
▲ 올해 6월 영국을 방문한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 Getty Image
▲ 올해 6월 영국을 방문한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 (출처/Getty Image)

 

 올해 6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다. 이 국빈 만찬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 부부, 윌리엄 왕세손 부부 등 16명과 트럼프 대통령 가족 8명을 비롯해 양국의 주요인사가 무려 17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의 국빈 만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식사와 곁들이는 와인인데 특히나 와인을 좋아하는 영국 왕실은 한 병에 1400파운드(210만원)에 혹가하는 샤또 라피트 로칠드 Chateau Lafite Rothschild 까지 준비해 트럼프 대통령을 극진히 맞이했다.

영국왕실에서는 와인을 즐기기도 하지만 와인을 단순한 음료가 아닌 그들의 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이너리까지 소유하고 있는데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이 와이너리는 그의 셋째 아들인 에릭 트럼프가 운영하고 있다.

 

▲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 내 와인코너에서 모델들이 '트럼프 와인' 4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롯데백화점) /서울파이낸스
▲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 내 와인코너의 '트럼프 와인' 4종 (사진=롯데백화점) / 서울파이낸스

 

트럼프 와이너리의 와인을 마신 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마치 5달러를 주고 사서 마실 만한 와인에 레이블을 붙이고 50달러에 판매한다.” 며 조롱했는데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로 와인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여름 즈음에 한국의 롯데백화점에서도 트럼프 와이너리의 와인들이 출시됐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5달러를 주고 마실 와인인지, 50달러를 줘도 아깝지 않을지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처럼 와인은 과거부터 서민들의 식수 대신 사용되는 음료로, 또 어떤 와인들은 왕과 로얄 패밀리가 즐겨 마시던 특권층의 음료로, 정치적인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루이 15세와 그의 연인, 마담 드 퐁파두르는 토카이 Tokaji 라는 와인을 즐겼는데 루이 15세가 퐁파두르에게 이 와인은 “왕들의 와인이자 와인의 왕 Vinum Regum, Rex Vinorum” 이라며 토카이 한잔을 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루이 15세와 퐁파두르가 즐긴 헝가리의 귀부와인 토카이 / 헝가리안프리프레스
▲ 루이 15세와 퐁파두르가 즐긴 헝가리의 귀부와인 토카이 (출처/ 헝가리안프리프레스)

 

토카이는 헝가리에서 만들어지는 귀부와인으로 귀하게貴 부패腐 했다는 뜻을 지닌 와인이다. 노블롯 Noble Rot 와인이라고도 불리는 귀부와인은 특정한 날씨 조건에서 보트리티스 시네레아 Botrytis Cinerea 라는 곰팡균이 포도를 감염시켜 수분을 날려버리고 쪼그라든 포도로 만들어진다. 

수분이 40%가량 증발된 포도로 와인을 만들다 보니 와인 한 병을 만들기 위해 다른 와인보다 배로 많은 포도가 사용되게 된다. 황금빛의 농축된 이 스위트 와인은 만들어지는 과정도 하늘이 도와줘야 가능하며 가격도 그리 저렴하지 않아 왕족과 귀족들이 즐겼던 와인이었다. 말 그대로 ‘신의 물방울’은 이런 와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샴페인 글라스 타워에 샴페인을 따르고 있다. / 핀터레스트
▲ 샴페인 글라스 타워에 샴페인을 따르고 있는 모습 (출처/ 핀터레스트)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샴페인을 즐겨 마셨는데 즐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신체로 여기는 왼쪽 가슴을 본 따 와인잔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쿠페 Coupe 라 불리는 이 잔은 헐리웃이나 유럽 영화의 결혼식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샴페인 글라스타워를 만드는데 쓰이기도 한다. 

당분이 듬뿍 함유된 청량음료가 그 시대에는 없었을 테니 기포가 혀를 놀래키는 샴페인은 이와 수염을 물들게 하는 레드 와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고 왕족들이 얼마나 애정을 가졌을 지 추측이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의 언니의 슬픈 이야기가 담긴 와인도 떠오른다. 마리 앙투와네트도 프랑스 혁명 때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한 죄명으로 처형된 비운의 여인이지만 그녀의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 역시 역사의 흐름 속에 비운의 생을 살아갔던 여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이자 돈나푸가타 라 푸가 와인의 모델이 된 마리아 카롤리나 / 위키피디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이자 돈나푸가타 라 푸가 와인의 모델이 된 마리아 카롤리나( 출처/ 위키피디아)

 

동생이 처형당하자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는 프랑스에 반감을 품고 프랑스에 대항하는 세력과 동맹을 맺는다. 정치적인 야망으로 왕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르던 그녀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하지만 전장에서 마주한 것은 나폴레옹이었다. 결국 카롤리나와 남편 페르디난도 국왕 일가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으로 쫓겨나듯 도망가게 된다.

후에 남편에게 미움 받고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추방된 뒤 63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언니와 동생 모두 가장 화려한 삶을 누리다 나락으로 떨어져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고 씁쓸하기도 하다.

▲ 시칠리아섬으로 바삐 도망온 마리아 카롤리나를 그린 돈나푸가타 라 푸가 와인 레이블 / 돈나푸가타 공식 홈페이지
▲ 시칠리아섬으로 바삐 도망온 마리아 카롤리나를 그린 돈나푸가타 라 푸가 와인 레이블  (출처/돈나푸가타 공식 홈페이지)


시칠리아의 돈나푸가타 와이너리는 바로 그녀가 머물던 장소이다. 돈나푸가타의 ‘라 푸가’ 와인 레이블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한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바로 시칠리아로 급하게 도망치는 카롤리나이다.

다시 영국 왕실로 돌아가서, 영국 왕실은 영국왕실인증 Royal Warranty 와인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와인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볼랭저와 폴로저 샴페인은 영국왕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데 볼랭저는 1884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최초로 영국왕실 인증을 받은 샴페인으로 왕실 인증을 받은 이후 볼랭저의 모든 병에는 ‘Royal Warranty’라는 마크가 있다. 

이 인증서는 거의 매년 갱신되는 것이기 때문에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지만 볼랭저는 1884년부터 한결같이 왕실 인증을 받고 있다. 현재 왕실 인증을 받은 샴페인은 등급에 따라 여섯 종류가 있다. 손님이 왔을 때 그 등급에 따라 여섯 종류가 다르게 서빙을 하고 있는데, 볼랭저는 가장 윗 등급이다. 

 

▲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이 볼랭저 스페셜 뀌베 샴페인으로 축배주를 들고 있는 모습 / 핀터레스트
▲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이 볼랭저 스페셜 뀌베 샴페인으로 축배주를 들고 있는 모습 (출처/핀터레스트)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연회 때에는 ‘볼랭저 알디 Bollinger RD’ 1973년 빈티지가 사용됐고, 케이트 미들턴과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연회에도 ‘볼랭저 스페셜 뀌베 Bollinger Special Cuvee’가 사용됐다. 또한, 케이트 미틀턴과 윌리엄 왕자의 아들인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왕자가 탄생했을 때에도 이를 축하하기 위해 ‘볼랭저 그랑 아네 Bollinger Grande Annee’ 2002년 빈티지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폴 로저는 처칠이 가장 사랑했던 샴페인으로 유명하며 폴로저의 최상위 샴페인이 그의 이름을 딴‘뀌베 써 윈스터 처칠 Cuvee Sir Winston Churchill’이 될 정도로 두 집안은 각별했다. 또한, 영국 왕실의 결혼식이나 다양한 행사에 사용되며 볼랭저만큼 사랑받는 샴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 외에도 故노무현 대통령이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접받은 프랑스 보르도의 ‘샤또 그뤼오 라로즈 Chateau Gruaud Laros’ 까지 왕과 로얄패밀리의 사랑을 받는 와인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유명인이 입은 옷을 우연치 않게 내가 입었거나 유명인이 다녀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느끼는 묘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유명인이 이미 거쳐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음식에 대한 나름의 신뢰감과 더불어 마치 그런 유명인이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든다. 

왕들의 은밀한 와인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직접 맛보고 한번쯤은 왕과 여왕이 된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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