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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松延유수현 에세이] 남편은 저승에 있는데 이승에서 임신한 서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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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松延유수현 에세이] 남편은 저승에 있는데 이승에서 임신한 서태후
  • 松延유수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02 09:45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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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알려진 서태후의 은밀한 비밀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은 그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인들은 이런 자국 역사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하물며 문자의 역사만 해도 오천 년이나 되는 중국은 어떻겠는가? 길고 긴 역사만큼 무수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성현의 가르침이든 영웅의 성공담이든 악인들이 저지른 악행이든 곳곳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리더들은 연설이나 강연 때에 꼭 한마디라도 옛 고사나 그들의 말을 인용한다.

특히 국제회의 통역사를 직업으로 가진 필자의 경우 국제회의에서 이를 늘 동시통역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덕에 필자의 지식도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필자가 지금까지 그렇게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가 꽤 되는데, 그중 오늘은 특별히 처세술에 관한 강의 통역을 맡았을 때 들었던 서태후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태후의 실제 모습(출처/바이두)
▲서태후의 실제 모습 (출처/바이두)

서태후라고 하면 워낙 유명해서 한국 사람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의 악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사치의 끝을 보여주는 여인이기도 하다. 중국 청나라를 망하는 지름길로 안내한(?) 여인으로, 중국의 한 전문가는 “서태후가 없었다면 청나라도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서태후 자신은 권력의 꿀맛으로 행복했겠지만, 서태후가 행복했던 시간만큼 청나라는 불행했을 것이니, 서태후에 대한 후대의 혹독한 평가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어려서 서태후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성이 서 씨인 줄 알았다. 나중에 서태후 관련 책을 보고 나서야 서태후의 거처가 자금성의 서쪽에 있어서 서태후로 불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태후는 청나라 제9대 황제인 함풍제의 후궁이었는데, 함풍제의 대를 이을 아들, 즉 훗날의 동치제를 낳은 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함풍제가 붕어한 후, 그 뒤를 이어 자신이 낳은 아들이 황제가 되었는데, 이가 바로 동치제이다. 이때 동치제의 나이 불과 5세였으니, 섭정은 당연히 생모인 서태후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서태후는 점차 권력의 화신으로 변해갔다. 옛말에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서태후는 무려 47년이나 권력을 장악했으니 그 탁월한 권모술수에 필자도 그저 놀랄 뿐이다.

▲중국 배우가 대태감(大太監)이란 드라마에서 서태후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중국 배우가 대태감(大太監)이란 드라마에서 서태후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출처/바이두)

서태후의 남편인 함풍제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했는데, 이때 서태후의 나이도 고작 27세에 불과했다. 과부로 수절하며 지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서태후는 그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많은 남자와 관계를 했고, 소문이 날까 봐 잠자리를 하고 난 뒤 모두 죽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서태후는 50이 가까이 된 나이에 덜컥 임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무기력하고 구토가 나서 서태후는 병이 생긴 줄 알고 어의를 불러 자신을 진찰하게 했다. 어의는 진찰한 결과 서태후가 임신한 것을 알았다. 그런데 눈치 없는 어의가 서태후에게 임신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모든 시종이 있는 앞에서.

그 뒤로 어의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서태후는 그 즉시 어의를 사형에 처했고, 현장에서 어의의 말을 들은 사람들도 아무 죄 없이 그 자리에서 모두 목이 달아났다.

▲서태후가 외교관의 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출처/바이두)
▲서태후가 외교관의 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바이두)

생각해 보라. 서태후가 남편인 함풍제를 20여 년 전에 잃고 과부로 살아온 세월이 몇십 년인데 임신이라니? 그럼 아이 아버지는 또 누구란 말인가? 누가 들어도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서태후 자신도 이 일이 새 나가면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 죽여 후환을 없앤 것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 뒤로 설복진(薛福辰)이란 어의를 다시 불러 자신을 진맥하게 했는데, 설복진은 영리했다. 서태후의 임신 사실을 눈치챘지만, 서태후에게 국사를 돌보느라 기력이 쇠한 것이니 기를 보강하는 약을 지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낙태약을 처방해 뒤처리를 깔끔히 마무리했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서태후는 설복진의 출궁을 허락했고, 설복진은 그길로 뒤도 안 돌아보고 고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고향에 도착한 설복진은 거짓으로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민 후 자신의 관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장사 지내게 했다.

며칠 후 서태후가 설복진을 죽이기 위해 설복진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는데, 그는 설복진의 꾀에 넘어가 설복진이 정말 죽은 줄 알고 궁으로 돌아가 서태후에게 그가 이미 죽었다고 보고했다. 그 말에 서태후는 안심했고, 다시는 설복진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서태후의 별장으로 지어진 이화원(출처/이화원 중국 홈페이지)
▲서태후의 별장으로 지어진 이화원 (출처/이화원 중국 홈페이지)

한편 설복진은 그 뒤로 입을 다물고 살다가 말년에 이 비밀을 털어놓았고, 이러한 사실을 실제로 ‘문진우기(聞塵偶記)’라는 책에도 기록해 놓아 후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설복진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태후에게 거짓을 고했지만, 어찌 보면 수십 년을 어의로 지내면서 궁중 암투를 봐온 그가 수없이 거친 경험으로 깨달은 처세술이 아니었을까? 라고 필자는 한 번 생각해 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했다. 서태후는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설복진이 살아서 영영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비밀을 후대에 전하리라고는.

필자가 당시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갑자기 떠올랐던 말이 있었다. 바로 '살아남은 자에게만 기회도 생긴다'라는 말이었는데, 서태후를 따돌리고 살아남은 설복진을 보면 과연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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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미 2019-10-02 11:25:18
오늘도 한수 배우고 갑니다^^
인간관계=처세술...

joo 2019-10-02 19:13:13
마지막 글이 진리네요 '살아남은 자에게만 기회도 생긴다'^^

시그마 2019-10-02 22:33:32
당시 어마어마했던 서태후의 권력과 그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남은 설복진의 처세술이 대단합니다

2019-10-03 17:11:33
하하하하 이런 얘기 처음 들었어요

이상돈 2021-05-05 21:23:43
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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