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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와인&클래식 "그들이 사랑한 여인들"...연인을 위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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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와인&클래식 "그들이 사랑한 여인들"...연인을 위한 와인
  • 박보미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12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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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의 러브스토리

화사한 봄날처럼 예쁜 사랑을 꽃피우는 연인들이 있는가 하면, 붉게 타오르던 낙엽이 떨어지고, 쌀쌀한 듯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밤, 특히 요즘같이 추적추적 가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지나간 사랑과 이별에 대한 그리움에 잠시 먹먹해지기도 하고, 씁쓸한 미소를 띠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사랑과 이별 등 그에 관한 심경의 변화는 그들의 예술성에 더욱 큰 영감과 집중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 위대한 작곡가들에게도 그의 음악들을 탄생하게 한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고, 실제 그로 인해 그들의 음악적 삶에 큰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없는 사랑


-자매를 사랑한 모차르트 -
아버지의 반대를 불구하고, 결혼하였던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마치 현실처럼 잘 그려져 있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었던 모차르트를 잡아주지 못하고, 함께 자기감정적이고, 즉흥적이었던 콘스탄체, 아버지와의 결별 후 안정적이지 못한 수입 속에서도 돈을 펑펑 쓰며, 사치를 부리고. 남편에게 조언은커녕 더욱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모차르트의 불안한 상태를 더욱 위태롭게 하였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결혼을 하기전 콘스탄체의 언니 알로이지아 베버를 사랑하였다. 잘츠부르크에서 떠나 만하임에 머물 무렵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이 사랑은 알로이지아의 배신으로 모차르트는 실연에 빠져있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어머니 안나의 사망으로 슬픔이 몰아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이 시기엔 천재적 신동의 위치는 잊혀가며, 경제적으로 위기도 맞이하는데, 이 위기와 슬픔이 모차르트를 더욱 음악에 몰두하게 하고, 또한 생계를 위한 작곡에 몰입하게 하였다. 이 무렵 서민들도 이해하기 쉬운 독일어의 오페라 징슈필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이 만들어지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언니 알로이지아의 배신이 이유였을지, 진짜 콘스탄체를 사랑했는지 음악적 독립과 동시 아내와의 결혼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현명하지 못한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물론 누나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결혼 생활을 하였다.

 

-수녀가 된 그녀를 닮은 아내를 맞이한 하이든-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은 성직자의 길을 걷기 원하던 부모의 반대로 무일푼으로 거리로 나와 평생을 귀족 가문의 후원 아래에서 음악 활동을 하였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귀족은 물론 당시 적국의 왕 나폴레옹마저 보호해준 위대한 작곡가였다. 하이든의 사랑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여인과 사랑이 없는 삶을 살았겠는가? 빈털터리 음악가로 이곳저곳에서 연주를 하고, 귀족들의 음악교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하이든도 사랑을 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가 모르친 가문에서 교사로 있던 당시 테레제라는 첫사랑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가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하이든의 첫사랑은 어긋나 버렸다. 그 당시 하이든을 사위 삼고 싶어 했던 이츠나그켈러 부부가 하이든을 설득했고, 하이든은 그들의 자녀 중 첫사랑 테제레와 가장 많이 닮았던 마리아 안나를 선택하여 결혼하게 되었다. 안나의 결혼 생활에서 테제레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그는 아내를 사랑 할 수 없었다.
안나는 남편의 음악 활동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음악에 무지한 아내였다. 하이든의 악보를 식탁에 깔게로 사용하거나. 머리를 마는데 사용하는 등 음악에 무지하고, 낭비벽도 심했다. 그렇게 사랑이 없이 지속된 결혼생활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지만, 그 사이에 아이마저도 없었다.
가정에서 행복을 얻지 못한 것을 음악에 더욱 몰두하였고, 그로 인해 음악사에 길이 남는 음악가로 성공하였다. 

 

사랑의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하다.

파리에 있는 피아노 연주하는 쇼팽과 여인 동상/출처 픽사베이
▲파리에 있는 피아노 연주하는 쇼팽과 여인 동상/출처 픽사베이

-피아노로 사랑을 노래한 쇼팽-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그의 곡에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서정성이 묻어나 있다. 쇼팽은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의 그런 성격 탓에 그의 열병과도 같았던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음악원에 다니는 소프라노에게 사랑에 빠졌던 쇼팽은 그녀에게 고백은커녕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주위만 맴도는 절절한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피아노곡만 작곡하는 쇼팽에게 그녀를 사랑하는 그 시기에 그의 음악적 영감은 오직 사람의 목소리로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다. 그때 그는 서정적인 감성이 풍부한 <야상곡>과 같은 음악을 작곡했다. 졸업 후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자신의 소심한 성격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을 그저 그의 음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 협주곡 2번>에 표현하였다.

그 후 파리에서 음악적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휴가차 갔던 드레스덴에서 16세의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였으나, 그의 건강적인 이유로 마리아의 모친이 반대하여, 파혼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앓던 기관지염이 심해져 건강도 약해지고, 어렵게 찾아온 사랑도 결국 어긋나게 되고, 크게 상심했을 때 소설가 조르드상주를 만나 심신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녀는 쇼팽보다 연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여성이었다. 결핵에 걸린 쇼팽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병을 치료하는 데 힘을 썼고, 쇼팽의 연주활동을 위해 대외적인 활동도 능숙하게 처리하여 경제적으로도 안정시켜주었다. 그로 인해 병과 상심에서 헤어 나와 사랑과 안정을 얻으며, 음악에 몰두하였다. <환상곡>,<발라드3번>,<발라드4번>,<환상폴로네>등 소품곡은 물론 규모가 큰 작품들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두 사람의 성격이 다르듯 정치적, 종교적, 자녀관 등 많은 부분이 달랐던 터라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쇼팽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으로 안정을 주었던 여인임에는 틀림없다.

 

-사랑과 음악을 모두 쟁취한 베르디(Giuseppe Verdi)-
베르디의 오페라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걸작들이 남겼다. 부유하진 않지만 빈곤하지도 않았던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과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베르디에게 음악적 교육의 평생 후원자가 나타나면서 오페라의 거장이자 정치가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막이 펼쳐졌다. 베르디의 후원자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이후 그의 장인어른이 되었다.

친구의 아들인 베르디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바레치는 베르디의 음악교육을 위해 학교를 옮겨주고, 스승님들을 연결해 주었다. 베르디는 후원자 베르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식을 올렸고, 딸과 아들을 낳아 다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갔다. 행복한 가정에서 생활하며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하기 위해 힘썼으며, 첫 번째 오페라 <산 보니파초의 백작 오베르토>가 완성되었지만 무대에는 올릴 수 없었다. 이 무렵 딸 비르지니아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베르디는 자녀를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무대에 올리지 못한 오페라를 올리는데 집중을 더하였다.
그로 인해 라 스칼라 공연장에 올라가게 되었고,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다. 하지만 이후 아들 이칠리오가 사망하고, 다음 해에는 아내 마르게리타마저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4년 만에 아이들과 아내 모두를 잃게 된 베르디는 깊은 절망에 빠져있었으며,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베르디에게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라는 여인이 그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다. 그녀는 처자식을 모두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베르디를 보살피며, 항상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그가 다시 재기 할 수 있는 <나부코>가 만들어지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로 연이은 오페라의 성공을 거둔 베르디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동거를 시작하였다. 두 사람이 결혼을 쉽게 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에게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의 아버지조차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근본 없는 여배우를 반갑게 맞이할 부모도, 주변 지인들도 베르디는 모두 단절하고, 그녀와의 사랑을 지켜갔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후원자이자 전처의 아버지인 바레치와는 단절할 수 없어 장인을 설득하고, 12년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베르디 본인의 삶의 배경으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만들어졌다. 첫 공연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수정과 보완 작업 후 올라간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어 최고의 오페라가 되었다.

베르디(좌)와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우)/베르디는 스트레포니와의 동거로 눈총을 받았고 이 경험으로 사회의 인습을 비판하는 오페라작곡/출처 네이버백과사전
▲베르디(좌)와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우)/베르디는 스트레포니와의 동거로 눈총을 받았고 이 경험으로 사회의 인습을 비판하는 오페라작곡/출처 네이버백과사전

 

연인을 위한 와인 샤또 깔롱 세귀르 (Chateau Calon Segur)

프랑스 5대 샤또 중 샤또 라피트의 소유자인 아버지와 샤또 라뚜르 상속자인 어머니를 둔 와인계의 엄친아 세귀르 백작이 만든 와인이다.

샤또 라피트와 라뚜르를 소유하고 있지만 내마음은 깔롱에 있다라고 늘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 마음을 기리고자 와인 라벨에 하트를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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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을 위한 와인 샤또 깔롱 세귀르 (Chateau Calon Segur) (사진 고성민 기자)

이 라벨과 다크초콜릿, 아로마향 덕분에 현대에 와서 프로포즈의 와인이 되었고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에 가장 많이 찾는 와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와인으로 마음을 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랑에 빠졌을 때 달콤한 가사와 멜로디를 듣거나, 이별 후 슬픈 노래를 들으면 평소보다 더욱 깊게 그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마음에 와닿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혹은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사랑스러운 노래를 들으면 뭔가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음악에 따른 순간적인 나의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작곡가는 단 몇 분, 몇 시간 만에 뚝딱 한 곡을 완성하기도 하고, 어떤 작곡가는 한 곡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수정과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빨리 만들어지고, 늦게 만들어지고의 중요가 아닌 그 사람이 무엇을 노래하고,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지 그 한 곡 안에 그 사람의 어떤 삶이 들어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과 이별 후 겪는 감정의 변화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이겨낼지 저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사랑에 투자하는 시간도 마음도 혹은 이별 후 겪는 아픔과 회복의 시간도 우리에겐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사랑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이 아닌, 사랑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여유와 안정의 빛이 보이는 그런 가을을 보내고, 그런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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