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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훼손된 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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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훼손된 채 방치
  • 고수영 기자
  • 승인 2019.12.10 0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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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4월 1일 기준 국외에 있는 문화재는 21개국 182,080점으로 집계되며 일본과 미국에 70% 정도가 분포한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파악 가능한 전 세계 주요 박물관 및 미술관(국․공립, 사립) 등 기관 중심의 통계자료에 불과하다. 수많은 문화재가 국외에서 보관, 수리, 복원에 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그대로 방치된다면 훼손 상태가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약탈된 문화재인 '독조도'는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보존에 대한 위험이 있다. 따라서 훼손되어버리기 전에 보존할 수 있는 대안이 재현작을 그리는 방법이다. 이에 '독조도' 재현작에 대해 취재했다. [편집자주]

조상들의 얼과 혼이 담겨있는 우리의 문화재가 이국 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있는 작품 중에 박물관에 소장되어 보관되는 작품은 그나마 보관 상태가 양호할 수 있겠지만 실상 수탈된 문화재는 문화재 수탈자의 집이나 절 어느 한구석에 무심히 보관되고 있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해도 잘 전시되지 않으면 보관상태 확인도 어려울 뿐 아니라 우리 문화재를 우리나라에서 가까이 두고 볼 수 없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또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기도 어려우며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하게 느껴지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약탈된 문화재를 반환을 요구하지만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더 앞서 만들어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문서이다. 

직지심체요절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을 약탈하면서 이를 가져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구한말 당시 주한 프랑스 공사이자 고서적 수집광이기도 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길거리에서 구입하여 여러 단계를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진 것이다. 약탈과 구매는 엄연히 달라서 약탈 당했던 의궤는 프랑스에서 반환받았지만 직지는 반환받는 데 실패하였다. 경매나 판매의 과정을 거쳤던 작품은 돌려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강희맹의 독조도재현작 (그림/정은경)

 '독조도(獨釣圖)'는 조선전기 학자 강희맹(姜希孟)의 작품으로 가로 86cm, 세로 132cm의 족자비단에 담채로 그린 작품이며 일본 오쿠라 문화재단을 거쳐 현재 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한국의 문화재 수탈의 거물로 각인된 인물인 오구라 타케노스케가 1921년경부터 30년간 수탈해 간 문화재 중 하나이다.

일제시대 약탈된 문화재였기 때문에 되찾아오기 위해 2009년 시흥문화원은 독조도 반환운동을 진행해 시민 1천여 명의 서명을 받기도 하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독조도'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화가 정은경은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독조도’를 한국에서 시민들이 손 터치로 그린 그림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재현작을 그렸다. 강희맹의 독조도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재현작을 그렸는데,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강희안의 그림까지 재현작을 그린 이유는 강희안과 강희맹이 형제 사이인데다 두 분의 묘가 시흥 연성동에 함께 조성되어 있어 그림을 함께 구성하기 위해 두 작품 모두 재현작을 그렸다. 이 두 작품은 현재 연성동 주민센터에 비치되어 시민들이 두 형제의 작품을 나란히 볼 수 있다. 

강희안(姜希顔)은 조선의 명신이며 서예가, 화가, 시인이다.  세종은 그의 이모부이며 문종, 세조 등은 사촌이다. 친동생으로 강희맹이 있다. 집현전 직제학 등을 지냈으며, 그림에 능했을 뿐 아니라 글씨도 잘 썼다. 세종이 옥새의 글씨를 맡길 정도로 당시에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집현전에서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에 대한 해석을 붙이는 일에 직접 참여하였으며 《용비어천가》에 대한 주석을 붙이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대표작으로 《고사관수도》가 있으며, 저서로 《청천 양화소록》이 있다.

▲강희안 고사관수도 재현작 (그림/정은경)

정은경 작가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재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작품들을 모아 작품전을 기획 중이다.

정은경 작가는 재현작을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 “현재 외국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이 보관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복원이나 재생이 필요할 것 같고, 모두 훼손되어 없어지기 전에 재현작을 그려 남겨 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시민들이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들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재현작을 그리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의궤가 돌아오긴 했어도 프랑스에 갔던 300여권 중에 겉표지까지 멀쩡한 것은 12권 밖에 되지 않았고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했는데 멀쩡한 것이 몇 권 없었다. 겉장이 다 뜯어져 있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들을 돌려달라고 해서 가지고 온 것인데 일본에 있는 작품들도 그런 것이 많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보통은 고구려 벽화나 불화만 안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조선 불화는 200여 점이 가 있지만 통계가 확실히 정리되고 있지 않은 점도 우려했다.

그림뿐만 아니라 도자기 같은 귀한 문화재들이 약탈되거나 판매되어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데, 과연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보관해 줄지 알 수 없고 혹시나 유실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작품이 우리나라로 반환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 우리나라 국민과 우리의 후손들이 유구한 역사 속의 찬란한 우리의 전통과 문화재를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중요한 작품들이 더 훼손되기 이전에 찾아오거나 재현작으로 남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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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19-12-10 17:33:12
독조도가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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