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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에세이] 와인&클래식 "그들이 사랑한 여인들(3)" 연인을 위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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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에세이] 와인&클래식 "그들이 사랑한 여인들(3)" 연인을 위한 와인
  • 박보미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0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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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파’의 두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

어떤 이에겐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랑이 있는 반면, 어떤 이에겐 홀로 마음에 담아두고 간직하고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혹은 숨기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 더욱 호기심을 갖고,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비밀을 말하는 순간 비밀은 소문이 되어버리고, 그 소문은 진실에서 왜곡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시련을 주기도 한다. 음악가들의 사랑 이야기 지난 두 번째에 이어 마지막 이야기는 비밀과도 같은 그들만이 간직하고 싶었을만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낭만파’의 두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

한 여인을 위해 노래한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슈만은 낭만파음악에 있어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로 꼽힌다. 슈만은 1810년 독일 작센 지방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문학가 집안 출신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슈만 또한 문학적 재능이 타고났고, 예술적 재능에도 뛰어남을 보였다. 7세 때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등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슈만을 위해 그의 부모는 교회에 데려가 음악적 기초교육을 시켰으며, 당대 유명했던 작곡가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1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홀로된 슈만의 어머니는 슈만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길 바랐고, 그로 인해 법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워낙 슈만 본인도 음악보다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김나지움(Gymnasium 고등교육) 과 대학을 입학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음악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터라 법학과를 다니면서 시와 음악을 결합한 예술가곡(藝術歌曲)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요하네스 브람스/출처 나무위키백과사전
▲요하네스 브람스 (출처/ 나무위키백과사전)

 

당시 독일 리트(Lied)의 대표적인 슈베르트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하이네(Heinrich Heine)의 시와 장파울(Jean Paul)의 소설에 큰 관심을 갖고 문학적 성취를 위해 집중하였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다니면서 그곳에 있는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와 극장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베토벤의 교향곡을 접하게 된 슈만은 그에 강한 인상을 갖고, 작곡에 주력을 하게 되었다.
잠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갔을 무렵 그곳에서 만난 법학과 교수는 음악 미학 서적을 출판할 정도의 음악적 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는데, 그를 만나면서 슈만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그로 인해 라이프치히로 다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피아노와 작곡을 배울 스승을 찾아다니며 음악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프리드리히 비크라는 음악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비크의 문하에서 피아노를 배우던 슈만은 같이 피아노를 배우던 여인과 교재를 하고, 결혼을 하기로 하였으나 그녀의 신분이 귀족이었던 지라 그의 부모에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사실 그 둘의 사랑을 그녀의 부모에게 알려 인연을 끝나게 한 사람은 그의 스승 비크였다.


그것 또한 그들의 운명이었을까? 슈만은 새로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이 바로 스승 비크의 외동딸 클라라 비크였다.
슈만과 클라라가 처음 만났을 때 클라라(Clara Josephine Schumann)가 고작 9살인 아이였지만 슈만이 활동하는 동안 클라라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아끼는 제자이지만 불안정한 잡지사 편집장이자, 가난한 음악가에게 피아니스트로서 앞날이 창창하고, 어머니 없이 애지중지 키워온 공주 같은 딸을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겠나? 결국 비크는 슈만을 미성년자 유괴범으로 고소를 하고, 그간 쌓아온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딸 사이에 있을 수 없는 법정 다툼이 시작되었지만 소송에서 슈만이 이기게 되며 비크는 슈만과 딸 클라라의 결혼을 승낙하였다.


어렵게 결혼한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고, 부부로써 서로 존중 하고, 아끼며 어느 부부보다 금실이 좋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갔다.
클라라와 결혼 후 모든 것에서 안정을 얻은 슈만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클라라를 만난 후로 그의 음악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클라라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피아노곡만 작곡하였던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한 후 수많은 가곡을 작곡했다는 것이다.


대표곡으로는 <시인의 사랑>,<여인의 사랑과 생애>,<리더 크라이스> 등 자신의 사랑과 아내 클라라를 위한 사랑이 담긴 시에 음악을 올려 만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피아니스트였던 아내를 위해 피아노 교향곡을 작곡하고, 클라라가 직접 연주하게 하였으며, 두 사람은 사랑 안에서 음악을 만들어가고, 음악 안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는 등 음악 역사상 볼 수 없는 남부러울 부부였다.

클라라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으나, 남편 슈만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여 남편을 내조하고, 그의 음악적 영감과 작업 몰두를 위한 뮤즈로써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런 아내의 사랑과 내조 덕에 더욱 큰 작품 활동을 하게 되어 명성을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스승이자 장인인 비크와도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수많은 연주 일정과 작품 창작으로 조금 지쳐있던 슈만은 후에 정신적으로 쇠약해져서 자살을 시도하였던 슈만은 자신이 직접 정신병원에 치료를 희망하여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고, 아내 클라라도 면회하며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슈만 부부를 만나 음악적으로 일어서게 되었던 슈만의 제자 브람스 또한 아픈 슈만과 그의 가족을 위해 항상 그와 그의 가족 곁을 지켜주었고, 클라라와 그의 자녀들도 살뜰하게 보살폈다.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사이의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클라라와 브람스는 결코 부정한 사이가 아니었으며, 브람스는 누구보다 슈만을 존경하고 은인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클라라 또한 브람스를 아끼는 남편 슈만의 뜻을 따라 브람스에게 친절하고, 각별하게 대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클라라는 남편인 슈만을 사랑하고, 그가 애정 하는 모든 것을 함께 애정 한 여인이었다.

클라라 비크 슈만/출처 나무위키백과사전
▲클라라 비크 슈만(출처 /나무위키백과사전)

슈만은 그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시스트였다. 클라라를 만난 이후 그의 모든 삶과 음악은 클라라만을 바라보았고, 사랑했으며 그 당시에는 보기드문 정말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였다.


슈만이 죽기 전, 클라라가 마지막으로 와인을 찍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는데, 그때 슈만은 클라라를 안고 “나도 알아"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브람스와의 클라라의 사이를 눈치챘을 것이다. 라는 말도 있는데, 실제적으로 클라라는 슈만이 죽은 이후에도 정조를 지키며 슈만의 자녀를 위해 살았다.


슈만의 ‘나도 알아'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 만큼 당신도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마음을 알아, 당신의 사랑의 깊이를 내가 알아.. 두 사람의 삶을 비추어 짐작했을 때 충분히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평생을 한 여인만을 사랑한 슈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꿈을 포기한 아내 클라라 두 사랑의 사랑은 슈만의 연가곡집을 들으면 그 깊이와 따뜻함을 더욱 느낄 수 있다.

 


한 여인을 혼자 평생 마음에 담은 브람스(Johannes Brahms)

브람스는 1833년 독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는 음악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브람스에게 음악을 배우는 일은 당연했고, 그의 음악적 재능은 어려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아들의 연주활동으로 경제적 안정을 꾀하려던 부모의 생각과 달리 그의 음악 스승 코셀은 브람스의 장래를 망치는 일이라며, 부모를 설득하고, 자신의 스승들에게 브람스를 소개해 피아노와 작곡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요하네스 브람스/출처 나무위키백과사전
▲요하네스 브람스(출처 /나무위키백과사전)

브람스는 음악을 공부하면서, 주일에는 교회에서 다른 날에는 가수의 공연과 카페에서 연주를 하며 돈을 벌어가며 생계를 유지해갔다. 워낙 허약한 체질이었던 브람스는 가정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어야 했기에 무리하게 일을 해왔고, 그로 인해 결국 시골에 요양을 하러 들어가게 되었다. 건가의 회복을 위해 시골로 들어갔지만 자연과 함께 생활을 하며 산책과 사색을 하게 되었고, 그런 시간이 후에 브람스가 음악활동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찍부터 음악활동을 한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브람스는 15세가 되어서야 첫 독주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 후로 함부르크에 위치한 교회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독주회를 가지게 되었고, 첫 번째 독주회에서는 연주자로 기량(器量)을 발휘했다면 두 번째는 작곡가로써 입지(立地)를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연주 여행으로 본을 거쳐 뒤셀도르프로 간 브람스는 그곳에서 슈만을 만나게 되었다. 슈만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그에게는 다소 설레고, 영광스러운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브람스는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게 되고,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뛰어난 재능을 꿰뚫어 보았다. 슈만은 그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음악 신보>에 브람스에 대해 촉망되는 젊은 음악가라 소개하며, 브람스를 세상에 알리고 극찬하였다.


그렇게 브람스는 슈만에 의해 더욱 크고 새로운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그로 인해 라이프치히에서 브람스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브람스에게 많은 유명 음악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음악회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브람스에게 있어 슈만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브람스가 정신분열을 앓고 있을 때에도 슈만 가족과 함께 슬퍼하고, 그를 위해 걱정을 하며 그의 가족을 보살피는 역할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슈만과 클라라 곁에 머물면서 슈만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 그의 부인 클라라에 대한 연정을 쌓아갔던 브람스는 슈만을 생각하며, 그 마음을 바로잡는 본인의 사랑에 대한 절제력을 길러왔다.


슈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브람스는 슈만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그의 아내 클라라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클라라가 그의 은인의 아내였으며, 14살이나 많은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브람스의 연정을 끝나지 않았으며, 후에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홀로 키워가기도 하였지만 그 사랑은 끝까지 연인으로 발전하지 않는 플라토닉 한 혼자만의 사랑으로 이어져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성적으로 잘 대처하는 클라라의 자세와 클라라에 대한 사랑만큼 슈만도 브람스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한 여인을 혼자 마음에 품고 살았던 브람스는 어떤 다른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지 못하고,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후 남몰래 평생을 사모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브람스의 음악은 처음 들을 댄 다소 고전적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들을수록 그의 음악에 대한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고독한 삶이 음악에 묻어나는 듯 베토벤과 같은 깊이가 있으면서도, 낭만파적인 감정의 폭이 드러나는 것이 그의 삶과 그의 마음을 알고 들으니 더욱 마음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겉으로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면, 말하고 표현하지 못해도 마음 한구석 상대를 위해 숨겨놓는 사랑이 더 애절하고, 깊이가 있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소유하고픈 욕심으로 그 사랑을 깨트리는 것보다, 그 사랑 자체를 지키기 위해 혼자만 간직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하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나의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큰 외로움일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사랑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마시 아마로네/출처 박보미
▲토마시 아마로네(사진/ 박보미)

달콤하면서 쓴 사랑과도 같은 아마로네

이탈리아 베로나 북쪽의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방에서 나오는 레드와인인 아마로네(Amarone)는 고급 와인에 속한다. 독특한 제조방법으로 만들어지는 맛과 향이 이탈리아 레드 와인 중 가장 강한 맛을 내는 와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마로네는 쓰다는 뜻의 아마르amare에서 유래하였는데, 실제로 첫 맛은 조금 달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끝에 느껴지는 강하고 씁쓸한 맛이 결코 달콤하고 부드럽지만은 않은 와인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려준다.
빛깔은 아주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듯 진한 루비색이며 붉은 과일 딸기, 체리 향이 느껴지고 달콤한 코코아 향도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 아마로네의 강함은 낮지 않은 알코올 도수와 산미, 그리고 강한 타닌도 느낄 수 있다. 아마로네는 3~4년의 숙성과정 후 마시기 시작하는 것이 좋고 약 10년 이상 숙성 시킨 후 더욱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우리의 사랑과도 같다.


아마로네 중에서도 대표 생산자인 토마시를 추천한다 1902년부터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며, 독특하기로 유명한 드라이 레드 와인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랑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로네는 우리들의 사랑 안에 있는 단맛과 함께 쓴맛을 한 잔에 담아 놓은 듯하다. 

2019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만을 위한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모두를 위한 상대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마지막 달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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