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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와인&클래식 "할렐루야는 연말, 성탄절 공식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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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와인&클래식 "할렐루야는 연말, 성탄절 공식 연주곡?"
  • 박보미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2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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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아이들에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오시는 날이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이 다가왔다. 곳곳엔 크리스마스트리와 선물 꾸러미로 장식된 모습을 볼 수 있고, 사람들에게선 설렘과 들떠있는 모습들이 연말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도 탄생의 정경을 재현하는 이탈리아의 프레제피오/출처 위키피디아
▲그리스도 탄생의 정경을 재현하는 이탈리아의 프레제피오(출처 /위키피디아)

이맘때쯤 이면 어김없이 많은 곳에서 연주되는 레퍼토리(repertory)가 있다. 바로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Messiah>이다. 오라토리오는 성경을 기반으로 구성한 종교적 내용으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반주에 독창, 중창, 합창 등으로 구성된 쉽게 말해 종교적 오페라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처럼 연기를 하지는 않고, 서서 노래를 부른다.

아직까지는 무슨 이야기인지 생소할지 모르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이 한 소절을 듣는다면 10명 중 8명은 “아~!”하고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것이 헨델의 오라토리오(oratorio) <메시아>에 수록된 합창곡 ‘할렐루야'이다

201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하여 ‘음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헨델의 <메시아> 그 탄생 비화로 마지막을 장식하려 한다.


헨델은 남자인데 왜 어머니?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 사실 음악 역사상 세계적으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공식화되어있지만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칭하는 곳은 일본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이것은 일본에서 바흐와 동시대에 대등한 음악 활동을 한 작곡가이지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와 달리 수식어가 없던 헨델에 관한 서적에 표제로 붙여진 것이 우리에게도 이렇게 알려진 것뿐이다. 두 사람의 음악적 스타일과 삶이 상반된 이유로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대조된다고, 그렇게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또한 시대적으로 상대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출처 나무위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출처/ 나무위키)

 

<메시아>는 성탄절을 위한 작품?
<메시아>는 헨델의 작품들 가운데 일반인들에 가장 낯익은 곡이다. 또한 성탄절에 자주 연주되어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이기도 하다. <메시아>는 예수의 생애에 따라 제1부는 대림절과 성탄절, 제2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승천,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 제3부는 요한계시록에 있는 내용을 주된 바탕으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할렐루야’는 2부 중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생을 모두 담고 있기에 성탄절에 특별히 연주되는 음악은 아니다. 사실 헨델은 부활절에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후 북아메리카에서 성탄절에 연주하는 관습이 확장되어 오늘날 성탄절과 연말에 자주 연주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헨델은 <메시아>는 연주시간이 거의 2시간에 달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대작이다. 특히 합창에 있어 매우 뛰어난 곡들이 많은데, 영국 초연 당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의 장엄한 합창을 듣고 감탄을 금치 못해 기립하여, 뒤를 이어 모든 청중이 기립하였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 때 청중 모두 기립하는 전통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헨델은 이렇게 선율, 화성, 대위법 등 모든 것에서 자유로우면서 흐트러짐 없는 곡을 단 24일 만에 완성했다. 이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감이 오지 않겠지만 헨델 스스로 <메시아>를 완성한 후 “신께서 나를 찾아오셨던 것만 같다"라고 말했다니 이쯤이면 얼마나 기적같이 만들어진 곡인지 감이 오는가?

[예수의 부활] 16세기 화가 그뤼네발트의 작품/출처 위키피디아
▲[예수의 부활] 16세기 화가 그뤼네발트의 작품(출처 /위키피디아)

 

명예와 물욕의 자유영혼 헨델, 오라토리오의 역사로 남다
헨델은 독일 출신으로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세계 음악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음악가다. 바흐와 함께 바로크 음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악가 중 한 명이다.
바흐와 헨델은 동갑으로 동시대에 음악 활동을 했지만 바흐는 독일을 벗어난 적이 없고, 헨델은 자유롭게 유럽을 다니다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실제 두 사람은 음악적 스타일도 삶의 스타일도 정 반대였고,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교회음악 <메시아>로 생의 마지막에 음악적으로 경제적으로 최상을 누렸던 헨델은 다른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의 지휘자나 연주자로서 기반을 다져왔느냐? 헨델은 그 시대에서 보기 드문 자유로운 스타일의 음악가였다.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위해 독일을 벗어나 이태리에 가서 당시 유럽 전 지역에 유행하는 이태리 오페라를 공부하고, 작곡하며 무대에 올리며 온전히 본인의 재능과 작품으로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을 하였다.

귀족의 후원이나 궁정음악가의 자리도 마다하고, 소속되길 거부하며 스스로의 음악의 자리를 확립하기 위함이었을까? 고집이었을까?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라 믿고 싶다. 아무튼 헨델은 당시 이태리 오페라의 유명 도시와 유명 작곡가들을 만나 대결도 하고, 그로 배움도 얻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휴가철마다 영국에 들렀는데, 그때 헨델은 영국의 생활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워 영국에서 자신만의 음악 영역을 확장시키게 된다. 당시 영국에도 이태리 오페라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미 이태리에서 자신이 만든 오페라를 성공 시킨 헨델은 영국에서도 이태리에서 얻는 음악적 영감과 스타일을 가지고, 영국인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다. 헨델은 결국 영국으로 귀화를 하고, 영국에서 이태리 오페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청중의 감성을 사로잡기에 뛰어남을 갖고 있던 헨델은 인기에 부합하는 화려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영국 사교계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헨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반대세력이 생기면서 헨델을 위기에 빠트리려는 일들도 만들어지고 했다. 그런 세력에도 헨델의 음악은 영국인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후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태리에서 온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의 영국 극장 등장으로 잠시 주춤했던 헨델은 위기를 의식하고, 이태리 성악가들을 초빙하는 등 자신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 보논치니는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헨델에게 결국 패하였으나 헨델이 위기를 맞기 시작한 건 예상 밖으로 헨델이 연주자로 데려온 두 소프라노에 의해서다.

여배우들의 기싸움이 대기실을 넘어 무대에서 머리를 잡고 싸우는 등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를 본 왕실에서는 헨델에게 지원을 중단하고 헨델이 맡고 있던 왕립음악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도 해산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기를 맞이한 헨델은 다른 오페라 단을 설립했지만 이 땐 영국에서도 이미 이태리 오페라의 인기가 식어 더 이상 헨델의 음악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였다. 게다가 존 게이(John Gay)라는 극작가의 영어로 된 가벼운 풍자극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가 영국 청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태리어로 된 헨델의 오페라는 더욱 외면받게 되었다.

영국 로얄 아카데미 국립극장/출처 위키피디아
▲영국 로얄 아카데미 국립극장(출처 /위키피디아)

헨델은 결국 파산을 하고, 스트레스로 뇌졸중을 얻어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결국 고국인 독일 아헨으로 돌아가 온천에서 요양을 하며, 건강을 회복하며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병을 털고 일어났다. 이렇게 그가 한순간 삶의 끝까지 갔다 다시 희망을 찾고, 새로운 음악에 몰두하는데, 그때부터 만들어진 작품들이 바로 오라토리오 작품들이다. 사교계의 유명 인사로 최상의 것들만 누리다 한순간 모든 재산과 명예, 건강까지 잃고 무엇을 느낀 것일까? 돌연 종교음악에 몰두한 이유가 무엇일까?

헨델은 <메시아>뿐 아닌 <삼손>,<세멜레>,<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ph and his Brethen>등 수많은 오라토리오 작품을 만들어냈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고, 그는 결국 시력까지 점점 멀어져 갔는데, 그 와중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고 제자에게 악보를 그려 달라 요청하며 계속 진행해 갔다. 그 후로 죽기 전까지 오라토리오 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품들은 헨델의 명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헨델은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의 소유자였으며 급하고 욱하는 성격 탓에 적이 많기도 했다. 실제로 명예욕, 물욕이 많은 사람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삶의 마지막 병원의 후원을 위해 메시아를 연주하고,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해 후원을 하는 등의 자선활동으로 모두 내어주고 간 것을 보면, 과연 그가 왜 그렇게까지 비난을 받으며, 돈을 좇아 음악을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의 장례식에 3천 명 넘는 사람들이 추모를 왔다는 것을 보면 결코 헨델은 나만을 위한 악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헨델의 음악은 위대하고, 정말 천상에서 들리는 천사들의 합창소리같이 들리기도 한다. 무슨 날이라 불리어지는 위대한 곡보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 위대하고, 웅장하고 멋진 음악과 노래가 아닌, 그 진정한 기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병아리 같은 아이들의 작고 여린 목소리라도 진심의 기쁨과 축하가 담긴 성탄의 노래가 더욱 많이 들렸으면  한다.

환희로 가득 찬 성탄절 사랑하는 사랑들과 함께 달콤한 <모스카토 다스티>한 잔으로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을 보내보자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12월의 와인샵풍경/사진 박보미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12월의 와인샵 풍경(사진/ 박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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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인들의 크리스마스 와인, 모스카토 다스티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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