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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코로나19 사태 속 '부산행'의 기억…공포와 혐오는 바이러스보다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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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코로나19 사태 속 '부산행'의 기억…공포와 혐오는 바이러스보다 빠르다
  • 김주리 미국통신기자
  • 승인 2020.03.03 18: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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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김주리 미국통신기자]
[국제부/김주리 미국통신기자]

"그냥 닫아!"

버스회사 상무를 맡고 있는 용석은 '악역'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서울과 천안, 대전을 거쳐 지역사회에 퍼지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만의 안전을 생각하며 똑같은 위험에 처한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임산부와 어린이에게도 가차 없다. 살기 위해 달려오는 이들을 보고도 코앞에서 문을 닫아버리는가 하면 생사를 넘나드는 지옥의 열차 칸을 죽을힘으로 뚫고 나온 사람들을 향해 "감염자일 수도 있다"라고 몰아세우며 문전박대 해버린다. 공포에 지배당한 용석은, 타인을 혐오하고 희생시키며 그의 악행은 감염 규모가 늘어날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세상이 흉흉하다. 국제사회 곳곳에서는 아시아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현상이 심화돼 2차 사회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으며, 발원지로 추정되는 중국 외에 확진자가 가장 많은 한국 내에서도 중국인들과 특정지역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 발언, 확진자들을 향한 무차별적 인신공격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경이 곤두선 시민들은 사사로운 것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에 대한 적대심과 공격성을 드러낸다.

국제사회 속 아시아 혐오 현상을 취재하던 중 접한 사례가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기업들이 잇단 재택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임신을 한 직원 혹은 임신한 아내를 둔 남자 직원의 재택근무를 우선적으로 시행하겠다는 회사의 조치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직원들의 사례였다. 본인들도 임산부도 똑같이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된 상황에서, 자신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다. 노약자 건 임산부 건, 내가 먼저 안전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리던 용석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하루가 멀게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들의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의 공포는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당장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탑승한 사람이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며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감염이 이루어질지는 알 길이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의 위험도를 '매우 높음'으로 상향시켰으며,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와 유럽연합(EU) 또한 같은 조치를 취했다. 명백히 '비상사태'다. 10분이 멀다 하고 핸드폰을 울리는 긴급 알림에 불안감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다시 한번 <부산행>을 살펴보자. '악역' 용석을 연기한 배우 김의성은 <부산행>의 흥행과 더불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상화 역을 맡은 배우 마동석에게 '명존세(명치를 매우 세게 때린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를 당하는 모습을 스페셜 영상으로 공개한 바 있다. 새드엔딩으로 볼 수 있는 <부산행>에서 이기적이고 악랄했던 용석이, 감염자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와중에도 어린아이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지키는 정의감 넘치는 상화에게 응징당하는 '권선징악'의 장면을 보고 싶다는 관객들의 간절한 요청에서였다. 상화는 폐쇄된 사회 속 최악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떠한 혐오와 차별도 없이 사회를 지켰다.

우리 모두가 상화가 될 수는 없다. 영화적 장치를 위해 다소 극단적이며 비현실적인 선(善)을 실천하는 상화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드러난 시민들의 공포심은, 오히려 '악역'이었던 용석의 행동과 태도가 냉정한 현실 속 '이성적 판단'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선행들은 사회 곳곳에서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다. 배우 김보성은 국내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대구에 내려가 마스크 나눔 이벤트를 펼쳤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곧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가 질병 확산 방지 조치에 나섰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의사'로 돌아가 대구에서 사흘째 진료 봉사를 하고 있으며 함께 봉사에 나선 의료진들은 비서진의 동행없이 진료를 보고 있는 안철수 대표를 시민들이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국내의 한 유튜버 역시 마스크가 부족한 지역을 방문해 역무원들과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는 모습을 담아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감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관리를 잊지 않았다.

백신조차 유통되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가 세계에 퍼지고 있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공위생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자기관리는 필수다. 하지만 개개인을, 그리고 사회를 바이러스로부터 지켜내는 건 예방수칙에 따른 개인위생 관리를 통해서지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혐오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부산행> 속 영웅인 상화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용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포에 의한 불안과 혐오는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져 결국 건강한 사회를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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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2020-03-04 00:26:24
심각해져만 가는 사회문제와 영화의 예를 연결지은 내용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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