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쓴 아시안은 공격대상 된다' 소문에 마스크 안쓰기도
"지하철에서 재채기라도 할라치면 눈치 보기 바빠요. 저도 모르게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뉴욕에 거주 중인 A씨는 최근 유쾌하지 않은 일을 겪었다. 맨해튼에 위치한 한식 레스토랑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A씨는 근무 도중 잠시 바람을 쐬러 밖을 나섰다. 이 때 A씨를 향해 한 남자가 다가왔다.
"백인 남자분이셨는데, '너희들'이 미국에 병균 같은 걸 퍼트리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중국인을 겨냥해서 한 말인지, 한국에서 사태가 커지고 있는 걸 두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한국 내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교민들이 '눈치보기'에 바빠졌다. 이미 '우한 폐렴'으로 코로나19가 보도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들의 '아시아 혐오'는 진행 중이었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될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해외 곳곳에서는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인종차별에 노출됐다.
하지만 정작 현재 미국 사회에서의 '코로나 공포'는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미한 수준이다.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은 '0'(제로)에 가까우며, 뉴욕 코리아 타운에 입점한 상점의 직원들에 따르면 가게 매출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교민들 또한 감염 자체에 대한 공포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찾아온 '혐오 현상'을 마주한 교민들의 불안함이다. 직접 인종차별을 당한 A씨와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흑인들이 길을 가던 아시아인을 이유없이 폭행했다', '마스크를 쓰면 감염자로 오해받아 공격의 대상이 된다', '지나가는 중동계 사람이 우한에서 왔냐며 옆구리를 툭툭 치더라' 등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무의식적으로 위축이 된다는 게 교민들의 말이다.
불안감은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으로의 이민을 앞둔 한국인들과 업무 등의 이유로 미국 입국 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국내 한국인들 또한 두려움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한미비자지원센터 이병기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으로의 여행을 제한하는 등 자국과의 출입국 상황과 관련해 '불편한 정서'를 내비친 상황에서, 비자 신청자들의 걱정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병기 대표는 "코로나19 발병 이전에 비해 비자 거절률이 높아지는 건 아닌지, 비자를 발급받은 이후에도 입국장에서의 절차가 엄격해지지는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병기 대표는 한국에서의 질병 확산을 이유로 비자 발급이 거절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 비자 발급의 제한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 한국 내 확산 이전과 이후의 비자 발급률에는 지표상 거의 차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4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제43차 유엔 인권 이사회의 고위급 회기에 참석한 강경화 장관은 "최근 보고되고 있는 코로나19 발생 국가 출신자에 대한 혐오 및 증오 사건, 차별적인 출입국 통제 조치, 자의적 본국 송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26일 아시아태평양코커스(CAPAC)는 서한을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한 "과잉반응과 무지에서 비롯된 인종차별적 공격을 막도록 도와달라"라고 당부했다.
또 CAPAC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을 씻는 것이지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영구화하는 게 아니다"라며 "공공보건 위기와 아시안 아메리칸 지역사회를 겨냥한 인종차별을 막고자 이 메시지를 알리는 데 도움을 청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해 적응할 준비가 돼 있고, 질병이 확산된다면 우리가 해야 할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백악관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25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긴급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미국 바이오 업체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은 이미 쥐 실험에서 효과를 보여 첫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철저한 시스템적 준비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이는 "재채기 한 번에 눈치를 보게 되는", 자신에게 당장 닥친 일이 아니라도 '알아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자들의 공포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