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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요시오카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영화 ‘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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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요시오카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영화 ‘신문기자’
  • 이산 기자
  • 승인 2020.03.17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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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라고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여기자 요시오카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가짜 뉴스에 맞서다
요시오카가 던지는 메시지, 정의란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형성되는 것

지난 6일,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심은경 씨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인 배우가 일본의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일은 전례가 없었기에 이는 큰 이슈가 되었다. 또한 심은경 씨가 출연한 영화 ‘신문기자’가 현 일본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와중에 수상하게 되어 이목이 더욱 집중되었다.

영화 ‘신문기자’는 일본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려는 사업의 실체를 폭로한 비밀 제보를 시작으로 이를 대중에게 알리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토우토 신문의 기자 요시오카와 내각정보조사실에서 일하는 스기하라는 정보조사실의 위협과 그들이 퍼뜨리는 가짜 뉴스에 맞서 ‘진실’을 캐내고 증거를 찾아내고자 한다.

요시오카는 미국에서 자라고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는 여기자다. 시나리오나 소설 등에서 인물, 사건, 배경이 주요한 3요소임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인물의 설정에 우리는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요시오카라는 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단순히 가짜 뉴스의 심각성을 폭로하고자 했다면, 위와 같은 ‘복잡한’ 설정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보의 실체를 파헤치는 요시오카(사진/출처=㈜팝엔터테인먼트)
▲제보의 실체를 파헤치는 요시오카(출처=㈜팝엔터테인먼트)

요시오카가 가짜 뉴스에 맞서 진실을 보도하고자 홀로 유독 온 힘을 다하는 이유는 비단 개인적인 정의감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요시오카는 “항상 스스로를 믿고 의심하라. 내가 아는 것이 진짜인지 전부인지 의심하라”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되새긴다. 이처럼 요시오카는 무엇이 ‘정의’가 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기 때문에 정부의 비리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요시오카는 쏟아지는 트윗 (트위터에서 150자 이내로 글을 올리는 것) 사이에서 자신만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예컨대, 친(親) 정부적인 성향을 지닌 한 저널리스트가 저지른 성폭행을 고발한 여성의 사건을 보면서 요시오카는 “(미투 고발을 한 여성들이 중상과 비방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여성들의 피해사실 고발을 막고 있다. 그 공포를 이기고 고발한 사유리 씨의 용기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라는 글을 SNS에 올린다. 또한 “이제 개인들이 연대하고 집단에 맞서려 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항상 의심하라”라는 말을 되새기면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분명히 표현한다. 어찌 보면 모순될 수도 있는 모습에서 요시오카의 ‘복잡한’ 캐릭터는 그 해답을 제공한다. 진실과 정의는 일본 정부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듯이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 일본, 한국을 가로지르는 다국적 배경을 지니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요시오카의 ‘말’ 역시 요시오카의 것일 뿐이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요시오카가 SNS에도 적었듯, “개인들이 연대하고 집단에 맞서려”했기 때문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여 그 동안 가려져 있던 성폭력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MeToo 운동). 아울러 요시오카와 스기하라, 그리고 첫 제보자인 칸자키 및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정부의 실체가 보도될 수 있었다. 즉, 진실과 정의는 개개인이 연대하여 쟁취하는 것이다.

보도에 힘쓰는 기자 요시오카의 모습(사진/출처=㈜팝엔터테인먼트)
▲보도에 힘쓰는 기자 요시오카의 모습(출처=㈜팝엔터테인먼트)

미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의’란 과연 존재할까? “항상 의심”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그것은 아마 정해져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가 ‘정의’의 내용을 선점하여 거짓된 정의를 퍼뜨릴 가능성도 농후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견지해야 될 점은, 그들의 거짓을 밝혀내려면 반드시 힘없는 개인이 연대하여 목소리를 모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즉, 진짜 정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 어머니를 두었기 때문에, 일본인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요시오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있을 수 있었고, 그가 밝히고자 했던 진실과 정의가 존재했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공통된 배경을 지닌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감춰져 온 진실을 밝혀낼 때, 정의는 실현된다. 요시오카는 기자로서 그것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철학적이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진실에 대한 믿음 하나로 목소리를 내다보면, 다른 목소리가 생겨나고, 결국 서로가 만나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험난하고 외로울 수는 있으나 거짓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가 아닐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민주적 시민으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영화 ‘신문기자’의 요시오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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