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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디렉터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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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디렉터스 컷’
  • 이산 기자
  • 승인 2020.03.26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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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지닌 브렌다와 야스민
서로의 존재 덕분에 드디어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다

“I’m calling you.”라는 가사의 OST로 유명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 디렉터스 컷’ (이하 ‘바그다드 카페’)이 2016년 한국에서 재개봉했다. 원래 1987년도 작품인 이 영화는 황량한 사막지대에서 카페와 주유소를 운영하는 브렌다 가족과 저 멀리 독일에서부터 미국으로 남편과 함께 여행 온 야스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년도 더 된 이 영화의 리뷰를 지금 쓰게 된 이유는 늦게나마 3.8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 작품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모토를 강렬하게 드러내는 페미니즘 영화다.

▲처음으로 마주한 야스민과 브렌다(출처=영화 캡쳐)

야스민은 독일에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관광을 온 여행객이다. 그러나 어떠한 일에서인지 야스민은 남편과 크게 싸우고 홀로 바그다드 카페로까지 걸어온다. 거기서 마주친 브렌다 역시, 이미 남편과 싸운 후 그를 내쫓은 상태였다. 브렌다는 바그다드 카페에서 묵기 시작한 야스민을 처음엔 수상하게 여겼지만, 이후 야스민의 진심 어린 태도와 사람을 매료시키는 마술 솜씨 덕분에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결국 함께 카페를 운영하면서 브렌다는 비로소 웃음꽃이 핀 삶을 살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표면적인 줄거리이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을 수 없다. 남편과 짐이 바뀌어 온통 남자 옷밖에 들고 오지 못한 야스민을 보면서 브렌다는 그를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신의 일상에 침투하는 그를 매우 경계한다. 그러나 야스민에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브렌다는 야스민을 연민하며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자녀의 유무가 브렌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브렌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도대체 무엇이 브렌다의 태도를 바꾸게 만든 것일까?

▲브렌다의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한 야스민(출처=영화 캡쳐)

 

문학 평론가 신형철 씨는 한 영화 잡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2013)”. 신형철 씨는 두 사람 간의 사랑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을 통해 설명했다. 야스민과 브렌다 역시 각자가 지닌 ‘없음,’ 즉 결여를 인지함으로써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야스민과 브렌다의 ‘사랑’이란 단순히 연애 감정으로서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정을 의미할 수도 있고,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야스민과 브렌다가 자기 자신의 결여를 포함한 상대의 ‘없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미 브렌다의 남편이 떠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야스민 역시 자신의 남편과 헤어지고 온 상황이었다. 한편, 브렌다가 야스민에게 남편이 없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으나 분명한 점은 야스민의 자녀가 부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야스민과 브렌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신뢰와 친밀감을 기초로 연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시 만난 야스민과 브렌다의 친근한 모습(출처=영화 캡쳐)

그렇다. 그들은 남편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브렌다의 삶은 노곤했고, 야스민의 삶은 외로웠으나 서로가 만나 자주적인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그리하여 야스민은 더 이상 스스로를 ‘문치슈테트너 부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야스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바그다드 카페는 더 이상 바그다드가 아닌 ‘브렌다 카페’로 일컬어지기 시작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독립은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서로가 연대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 이유는, 여성의 ‘결여’ 혹은 상대적 불편함이 여성들 간의 연대로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형철 씨의 표현대로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야스민은 브렌다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들의 ‘사랑’은 견고하다. 야스민을 좋아한 콕스가 “나와 결혼해 주겠소?”라고 고백했을 때, 야스민이 “브렌다와 상의해볼게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그렇기에 의미심장하다. 여성들의 동지애는 마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부메랑과도 같다. 많은 변화를 겪고 심지어는 부침을 겪어도 다시 돌아온다. 시작점과 끝점은 같지만 이미 동일한 부메랑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서로의 결여를 인지했고, 싸우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연대했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부른다(I’m call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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