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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수의 연애 칼럼] 이상형은 마치, 사라진 도토리의 가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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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수의 연애 칼럼] 이상형은 마치, 사라진 도토리의 가치처럼
  • 지해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0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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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싸이월드'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누구나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용을 안 한지는 꽤 되었지만, 막상 없어진다니 매우 섭섭한 느낌을 감출 수 없는... 그래서 서비스가 종료되기 전, 나도 오랜만에 내 싸이월드에 들어갔었다. 2011년도쯤 어디에 살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 당시 가장 좋아하던 노래들이 bgm으로 흐르고, 또 흘렀다. 다만 다- 흐른 뒤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재생되었다. 거기에 살던 나도 같은 시간 루프 속에서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2020년까지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싸이월드가 기록하던 9년 전의 난, 어떤 고민들로 잠 못 이루었을까? 그때의 내가 가장 열정을 쏟았던 건 뭘까? 가장 가치 있게 여겼던 건...? 지금의 나와 생김새만 비슷할 뿐, 아주 다른 분위기의 '나'는 이러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여기에 금방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진짜' 고민들을 SNS 같은 곳에 막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나 역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난 당시에 썼던 일기장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물론 나 혼자 보는, 나만을 위한 일기장이다. 마치 그림일기처럼, 이 일기장에 대입할 얼굴을 찾은 것만으로도 엄청 큰 수확이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싸이월드를 훑어보며... 이전의 나에 대해 궁금해하던 중에 다른 건 몰라도, '남자친구는 있었을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을까?'라는 질문에는 금방 답을 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이미 답을 아는 ‘나’ 말고도 조금이라도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나ㅏ 금방 답을 찾아낼 듯했다. 2011년도보다 좀 더 전에 작성해놓은 '백문 백답' 덕분(?)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백문 백답'...! 이곳의 단골 질문이 있다. 사실 이 주인공을 위해 나머지 99개의 조단역들이 준비된 것일 지도... 바로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관계 중 연애- 그중에서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요즘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지혜로워 진' 것도 같다. 굳이 이상형을 만들어 놓는 게 얼마나 쓸데없는지, 아니 심지어는 '여러모로' 방해가 되는 것인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에 나온 연예인들이 연애 관련 콘텐츠에서 '이상형 정해놓는 거 정말 쓸 데 없어요.'라고 누차 이야기를 해왔던 것도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진짜다.

이상형을 적으란다고 정말 이상형을 자세하게 적어두는 사람은, 그러한 인연이 자신에게 찾아오길 바라며 매우 신중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예 경험이 없거나, 이전에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자라면, 이 이는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일일 확률이 높다. '연애 시장' 역시 경쟁구조다. 아니,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지 않나. 더 멋지고 매력적인 이성이 그러한 상대방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이상형을 적어둔다 해서 그런 이성이 먼저 다가올 확률은 현저히 낮다. 오히려 적어두지 않는 편이 낫다. 이건 자신의 약점을 공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그런 이성에게 '약하다'라고 밝히는 것 아닌가.  

당시의 난 남자친구가 없었을 확률이 100%다. 거기에 적힌 내 이상형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성의 신체조건 중 비율을 따졌으면 따졌지, 키를 따지는 편은 아니다. 키가 커도 비율이 나쁘면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근데 싸이월드 속 백문 백답에는 정확한 숫자까지 기입해놓은게 아닌가. 몇부터- 몇까지의 키를 좋아한다고.

성격은 이랬으면 좋겠고.... 무슨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으며.... 어떤 룩의 옷이 잘 어울리고, 쌍꺼풀을 없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이었다. 남자친구가 생기려다가도 도망가게 만드는 게시물이다. '있던 썸도 없어져라'라고 부적을 가져가 붙여놓은 것과 진배없다. 

당시 나는 진짜 말 그대로 ‘어렸’던 거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니까, 나한테 궁금해하는 거니까 성의껏 대답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넌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해?’라고 묻는 남자들이 궁금해했던 건 내 이상형이 아니라, '날 좋아할 가능성이 있어, 없어?’였다는 사실이다. 짧게 말해, ‘난 어때?’였던 거다. 당시 난 이런 걸 알지 못했다. 

그들이 내 이상형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에게 특별히 잘 보일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나의 그 구체적이었던 이상형의 남자를 찾아서 소개해 줄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심지어 너무 구체적인 이상형은, ‘나는 어때?’라고 말할 이들의 입을 꾸욱 다물게 했던 것이다. 

‘아무나 막’ 만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본인이 본인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속단하지 말자는 얘기다. 난 이러한 사람이 어울려, 저러한 사람이 어울려... 그랬을 것이다, 과거에.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어울렸을 테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와 또 다를 수도 있지 않은가! 한술 더 떠서 어쩌면 ‘그러한’ 사람이라 과거의 누군가가 어울렸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서 그러한 특성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아닐까?

‘진짜’로 설정해야 할 것은 ‘좋아하는’ 특성이 아니라, ‘진짜 싫은’ 특성이다.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본다면, ‘난 이건 정말 싫어’라는 것들을 먼저 알려주는 게 낫다. 그리고 그걸 제외하고 인간성도 괜찮고, 외모도 매력적인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만일 내가 소개팅을 한다면 그렇게 할 것 같다.

...음 사실 난 이렇게 소개를 받아서 마음에 들어 사귀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너무 많았던 나는, 생각보다 연애를 많이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상형을 말한 내 주변에선 꽤 좋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더라는 거다. 

난 이런 스타일이 좋아, 저런 스타일이 좋아-라는 취향을 가질 순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거기에 가두어 두진 말자. 종교적 신념이 매우 뚜렷해서, 연인이나 배우자 역시 같은 종교를 가지기 원한다면 처음부터 그 울타리 안에서 찾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정치적 신념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이상, 바뀔 것 같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 역시 같은 의견을 나누길 원하는 무엇이라면.

이상형을 구체적으로 설정한다는 건, 대륙을 미리 정해두고 ‘어디로 여행갈까?’하는 것과 같다. ‘난 도시 여행을 좋아해’ / ‘난 휴양지가 좋아’ ... 혹은 ‘난 둘 다’...!

‘도시’여행이라 친다면, 그 여행지가 뉴욕일 수도, 도쿄일 수도, 북경일 수도, 싱가포르일 수도 있다.‘이 와중에 난 아시아 대륙 안에서만 여행하겠어’ 이런 아무짝에 쓸모없는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얼마 후엔 도시라서- 맛집이 많아서-가 아니라... ‘방콕이라서 방콕에 가고 싶은’, ‘뉴욕이라서 뉴욕에 가고 싶은’, ‘너라서 그냥 좋은’ 여행지가 생기시길 바란다.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수선화의 탄생 비화에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등장한다.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결국 물속으로 몸을 던진 한 대단한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 그래서 어느 학자는 인간은 누구나 ‘동성애적 열망’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당연히 자신과 같은 ‘동성’ 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인간의 애정 욕구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서 한쪽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그렇지 않나. 단순히 호르몬의 작용-으로 보려는 시선들에 보기 좋게 코웃음을 쳐주고 싶은걸! 그러니 보편적 인간보다 더 복잡한 자신이 어떤 이를 좋아하는지, 더 느슨하게 지켜보도록 하자. 

쉼 없이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는 인간은 '자유의지'라는 것을 갖는 멋진 개체들이다.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나를 꾸며내기 위한 꽤 많은 도토리 현질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새로운 SNS들로 여러번씩이나 갈아탔다. 나에게 미니홈피가 희미한 추억이 되었듯 우리의 지난 이상형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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