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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문화∙예술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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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문화∙예술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 박보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0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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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민족주의, 국민악파] 대표 문호 '고리키'와 대표 작곡가 '무소르그스키'
러시아 문학가 막심 고리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러시아 문학가 막심 고리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지난 주말 오랜만에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장에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지난 몇 달 동안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또 관객으로써 여간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대학로에 온 것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예전과는 달리 주말치고 확실히 한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더욱 여유롭고, 따스한 봄날의 마로니에 공원을 만끽할 수 있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몇 년 전 활기찬 젊음의 열정이 조금은 사라진 듯 한 게 사뭇 그립기도 한 것이, 나는 멈춰 있는데 주변만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관람한 연극 <밑바닥에서>는 러시아 대문호 고리키(Maxim Gorki/1868-1936)의 희곡으로 100여 년 동안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극장에서 상연한 고전극이라 했다. 작품 제목과 시놉시스(Synopsis)만 보아도 대략 어떤 내용일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예상대로 난장판이 벌어진다. 알코올중독자, 폐병 환자, 도둑놈, 사기꾼, 바람둥이, 추락한 배우 정말 흔히 말하는 밑바닥 직종? 부류?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다 있구나' 하며. 씁쓸한 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햇빛 없는 삶의 밑바닥, 마치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빗대어 보여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연극[밑바닥에서]출연 배우 및 스텝/출처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밑바닥에서' 출연 배우 및 스텝(출처/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유독 처음부터 눈에 띄는 캐릭터가 있었다. 한때 유명했다가 추락한 '배우' 그로 인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여인숙에 합류되어 지내 온 지 오래. 문득 멋진 대사로 박수와 환호를 받던 시절을 회상하다 알코올성 기억상실로 한 마디의 대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에 '영혼이 죽은 것 같다'라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영혼을 찾기 위해 술을 끊고, 도전하겠다고 노력 하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었고,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있었지만, 내가 예술가여서인지 그의 움직임과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움직였다.


러시아가 낳은 가장 독창적이고, 야성적인 작곡가 무소르그스키
(Modest Petrovich Mussorgsk / 1839.3.21~1881.3.28 )

무소르그스키는(Modest Petrovich Mussorgsk) 러시아 출신의 '국민악파' 작곡가로 러시아의 국민 음악을 위해 결성된 '러시아5인조' 중 한 명으로 뽑힌다. 위 연극이 동시대이자, 같은 러시아 출신의 작품이라 그런지, 극중 '배우'를 보고 눈과 귀에 떠오르는 작곡가 바로, 무소르그스키 이다.

유난히 눈앞엔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 한 장이 아른거렸다. 정리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 술독에서 나온 듯한 빨간 코, 초상화만 보면 위 '밑바닥에서' 작품 속 한 사람이라 해도 잘 어울릴 듯한 비주얼이지 아닐까 싶다.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이 병원에 입원중에 있는 '무소르그스키'를 그린 초상화/출처 나무위키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이 병원에 입원중에 있는 '무소르그스키'를 그린 초상화(출처 /나무위키)

그는 러시아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13세 때 근위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임관하는 등 음악은 물론, 역사와 철학, 교양을 고루 갖추었다. 무소르그스키의 아버지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위해 좋은 음악원과 음악교수를 찾아 교육을 시키고, 사관학교생활 시 작곡한〈기사의 폴카 Podpraporshchik>는 아버지가 직접 경비를 지출하며 출판을 해주는 등 그를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교 시절에, 이탈리아 오페라를 좋아하는 동료 장교들과 사귀었는데, 이때 동료이자 후에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 된 보로딘을 만나게 되었다. 또한 음악회에서 러시아 민족음악 작곡가 글린카의 음악을 접하게 되고, 무소르그스키는 이것을 계기로 민족음악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악과 더불어 러시아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그는 "과거를 현재에 되살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민족적 의지를 굳게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당시 국민악파였던 큐이, 발라키레프 등을 만나 교류를 하고, 후로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는 군에서 나와 음악에 전념하였는데, 타고난 노력과 천재성을 가지고 있던 그는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으로 음악인으로서의 기초를 완전히 다졌다.

1853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무소르크스키 형제는 물려받은 재산을 잘못 운영하여 상당 부분을 탕진하고, 농노해방과 동시 나머지도 빼앗겼다.
이후로 경제적 궁핍을 겪으며 돈을 빌려줄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1866년 민중의 삶을 노래한 가곡과 보다 큰 규모의 연작들을 발표하며 음악적으로는 더욱 성숙해졌다.
1868년 연작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작품<어린이 방 Detskaya>의 첫 노래를 작곡했고, 1막의 오페라〈결혼 Zhenitba>을 작곡했는데, 이 작품들에서 민족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색채를 가장 잘 나타내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에서<밑바닥으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시작되었던 생활고를 겨우 버티고 작품에 몰두하며 지냈던 무소르그스키는 결국,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고독과 시련을 맞기 시작하였다. 1865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동생과 함께 살다 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둘이 지냈는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결혼과 함께 혼자 남게 된 그는 술로 매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나,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녀를 평생 가슴에 품고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가족도 여인도 모두 잃고 혼자 남은 것에 불안함과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었을지 모른다. 몇 번의 알코올 중독의 치료도 받고, 요양을 할 정도로 술에 의지하며 지내다가, 먼 친척인 아르제니와 친하게 되었다. 가난한 시인 아르제니는 무소르크스키로 하여금 연가곡을 작곡하도록 힘을 불어 넣어주고,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 또한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도록 그를 격려하며, 마음 써 주었다.

그러다 건축가 하르트만의 죽음으로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은 그는 큰 슬픔에 빠져있다가, 1874년 하르트만의 유작을 모아 열린 추모 전람회에서 영감을 받아 전람회에 전시된 열 개의 작품을 음악으로 묘사하였다. 그 작품이 바로 피아노 모음곡<전람회의 그림>이다. 이 곡은 후에 프랑스 작곡가 라벨에 의해 교향곡으로 재탄생 된다.

그렇게 음악에 전념하며 술을 잊고 살려 노력했다. 1875년 무소르크스키는 친구였던 스타소프에게 "아르제니가 집 열쇠를 가지고 시골로 가서, 나우모프와 함께 살게 되었어. 그의 집에서 지금 막〈호반시치나>의 1막을 완성했어"라는 편지를 썼다. 실은 집주인이 그가 더 이상 돈이 없는 것을 알고, 무소르그스키의 가방을 내놓고, 내쫓았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의 추락은 발라키레프를 포함한 그의 친구들의 무관심과 폐인 취급하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도 그의 음악에 충실했고, 미완성으로 남긴 하였지만 오페라도 작곡하고, 노가수의 반주자로 지방 순회연주를 다녔고, 작은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에 발작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끝까지 그의 한줄기 정신은 음악적인 창작과 열정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마치 연극 <밑바닥에서>의 ‘배우’처럼 말이다. 술로 찌들어 어눌하기 짝이 없는 말과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다 낡은 재킷 주머니 속 돈을 꼭 쥐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러 도시로 가겠다고 말하던 ‘배우’, 치료를 받고 나면 다시 무대에서 대사를 읊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배우’, 그런 그를 조롱하고 무시한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외롭고, 고독하게 자신과 싸우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극<밑바닥에서>중 ‘배우’라는 캐릭터.

그가 바로, 그 시대, 극이 아닌, 그때의 무소르그스키를 보는 듯했다. 
1881년 무소르그스키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고, 조금씩 회복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대표적 화가였던 일랴 레핀이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 초상화가 앞서 말한 부스스하고 정리되지 않아 보이는 모습, 그가 죽기전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담당 간호사가 들었다는 그 외 마지막 외침 소리는.

"모든 것이 끝났어.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라는 고통스러운 외침으로, 그 소리는 15분도 채 안 되어 끝이 났다고 한다.      
   

건강하게 음악활동에 전념하던 시절 무소르크스키/출처 나무위키
▲활발한 음악활동과 함께 건강한 시절 무소르크스키 초상화(출처 /나무위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과 고뇌, 환희와 추락으로 인한 갈등과 번뇌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예술계의 빈부격차(貧富隔差)는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그 현실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기가 찰 만큼, 천재 소리를 들을만한 예술가가 아닌, 유능(裕陵)하고 젊은 청년 예술가들은 오늘도 내일을 고민하고 있다.

돈이 없고, 지낼 곳이 없고, 술에 빠지고, 과연 예전, 혹은 소설 속 예술가들의 이야기일까? '내가 할 일은 과거를 현재에 되살리는 것'이라는 무소르그스키의 말이 다른 의미겠지만, 무섭게 피부에 와닿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 시국에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수많은 예술가들 이야말로,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바닥을 쳤다고, 끝이 아니다. 바닥을 쳤다고, 실패자가 아니다. 만에 하나 지금 우리가 바닥을 쳤다면, 반드시 그 바닥을 발판 삼아 힘껏 발 구르기 하여 더 높이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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