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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환의 세계여행]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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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환의 세계여행]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룩셈부르크
  • 권동환 여행작가
  • 승인 2020.05.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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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강소국
-세계 유일의 대공국
-그들만의 생존 전략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찾아 서유럽의 조그마한 나라로 향했다. 네덜란드, 벨기에와 함께 베네룩스라고 불리는 유럽의 강소국 룩셈부르크였다. 잘 산다는 의미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부탄처럼 행복지수가 높다든지, 미국처럼 나라 자체가 잘 산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개인당 소득으로 따졌을 때는 룩셈부르크가 단연 부자 나라 1위이다. 1인당 GDP가 11만 4340달러로써 1200원의 환율로 가정했을 때 한화로 1억 3721만원이다. 룩셈부르크에서 억대 연봉은 꿈이 아닌 평범함 그 자체란 뜻이다. 그렇지만 룩셈부르크가 애초부터 이렇게 부자들이 많은 나라는 아니었다.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룩셈부르크의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풍경[사진=권동환 여행작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룩셈부르크의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풍경[사진=권동환 여행작가]

언제부터 룩셈부르크가 잘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룩셈부르크는 이웃 나라들과는 달리 왕궁을 찾아볼 수 없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왕이 아닌 대공작이 입헌군주제의 역할을 맡는 세계 유일의 대공국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경에는 룩셈부르크의 처세술이 있었다. 영토 위치 자체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이웃나라들이 대부분 강대국이다보니 자극하지 않기 위해 룩셈부르크의 최고 지배자는 스스로 왕국이라는 명칭보다는 공국의 지위를 유지해야 했다. 힘이 있는 귀족이라 하더라도 시대적 배경상 대공작은 황제에게 복종해야 하는 위치였다. 이것은 중국을 의식하여 황제라 칭하지 않고 왕위를 책봉 받는 형태를 취해왔던 우리나라와 일맥상통한다. 주변 강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외세의 통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룩셈부르크 구시가지 골목길[사진=권동환 여행작가]
▲룩셈부르크 구시가지 골목길[사진=권동환 여행작가]

그러한 생존 전략은 룩셈부르크의 관광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룩셈부르크 중세 요새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부청사를 포함한 다양한 건축물들이 포함된 중세 요새 도시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천혜의 요새인 보크 요새이다. 마치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963년 언덕을 요새화한 것을 시작으로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게 되었다. 동굴 형태의 보크 요새는 합스부르크, 프로이센, 스페인, 게르만 왕조가 탐냈다. 지리적 이점과 강력한 방어력은 세력을 넓히고자 하는 강대국에게 군침 도는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프랑스 혁명군이 반 년 동안 보크 포대를 공격했지만 절벽으로 이뤄진 보크 포대는 난공불락이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코니라 불리는 이곳은 전쟁에서 살고자, 고유의 민족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룩셈부르크를 알 수 있다.

룩셈부르크 중세 요새 도시의 파노라마[사진=권동환 사진작가]
▲룩셈부르크 중세 요새 도시의 파노라마[사진=권동환 사진작가]

그렇게 주변 눈치만 보던 룩셈부르크가 유럽의 경제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시점은 19세기부터였다. 프랑스 국경을 따라 대규모 철광석 광산이 개발되면서 철강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주변 강국과 유대를 굳건히 하던 자세 덕분에 다양한 경제협력 기구에 가맹함으로써 소국의 불리함을 극복했다. 특히, 석유 파동 이후의 세계적 경제 침체는 철강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정부는 이런 경제적 부진을 산업 다변화로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는 이베이, 아마존, 맥도날드, 페이팔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시킨 것은 물론 유럽 금융 중심지로써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럽 경제의 기둥인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포르투갈어 등 다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능력 그리고 안정적인 정치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적해서 여유로움이 있는 룩셈부르크의 거리[사진=권동환 여행작가]
▲한적해서 여유로움이 있는 룩셈부르크의 거리[사진=권동환 여행작가]

룩셈부르크에는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존하길 원한다’라는 글귀가 돌담에 새겨져 있다. 항상 외세의 통치 속에서 살아남는 역사뿐이던 그들의 민족성과 문화를 대변하는 말이다. 푸른빛의 지붕과 아름다운 알제트 강이 어우러진 요새에서 중세 마을의 고요함은 약소국의 불리함을 이겨내기 위한 룩셈부르크인들의 인내심과 같았다. 21세기의 룩셈부르크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자신을 낮추어 주변과 공존하고 시대적 변화에 맞춰 성장한 노력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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