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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격리 상황에 리어왕을 집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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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격리 상황에 리어왕을 집필했을까?
  • 채송아 영국통신기자
  • 승인 2020.05.24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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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창궐했던 16-17세기 런던에서 셰익스피어가 경험했을 일을 상상해보자.

지난 3월 22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던 시대에 전염병이 창궐했던 것과 그 시기에 집필했던 글들을 언급하였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갑작스러운 격리 생활로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 좌절하지 말 것을 경고하며 16-17세기 런던의 상황과 셰익스피어의 집필 이야기를 전했다.

과거 1564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몇 달 후인 여름에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upon-Avon)에서는 큰 전염병이 발병했고 그의 형제들을 포함하여 마을 사람들의 4분의 1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자라면서 전염병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은 주변인들로부터 공포와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가까운 이웃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전문적인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전염병이 셰익스피어의 직업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황들이 있다. 또한 극장가가 가장 활발한 시기인 봄, 여름에 전염병이 가장 심해지는데, 이로 인해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지해야 했으므로 그 당시에도 극장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이때의 전염병은 페스트균 (Plague)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감염병으로 흑사병이라고도 불렸으며 벼룩이 매개체였다. 그러나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의사들은 전염병이 쥐의 벼룩으로 옮는다는 지식이 없었는 데다가, 당시 교회의 설교자가 (1603-1613 사이로 추정), “전염병의 원인은 죄 때문이고, 죄의 원인은 연극이다”라고 설교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작가로서의 명성이 가장 높을 시기에 많은 런던의 공연장은 78개월 중 대부분의 시간을 문 닫아야만 했다. 그 점에서 볼 때 전염병은 공연계의 분명한 위협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배우들은 배우 외에 다른 직업을 병행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1세에 이어 제임스 왕 1세가 새로 왕위에 올랐었는데, 당시 리어왕의 첫 공연이 1606년 boxing day(크리스마스 뒤에 오는 첫 평일)에 제임스 왕 1세 앞에서 행해졌었다. 1606년 여름에 런던에서 전염병 사건으로 모든 런던 극장이 문을 닫았었으므로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셰익스피어가 격리 상태에서 집필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매우 개연성 있는 추측이다. 그때의 전염병으로 인해 10분의 1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런던의 구역도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 셰익스피어의 집주인인 마운트 조이 (Marie Mountjoy)가 전염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가디언 기자는 당시 도시 분위기인 황량한 거리와, 폐쇄된 상점, 붉게 칠한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간병인들(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표시) 그리고 반복되는 장례식으로 인한 교회의 끝도 없는 종소리를 셰익스피어 글 속 이미지에 담긴 죽음, 혼돈, 허무주의나 절망감과 비교하며 묘사하였고, 전염병의 창궐이 셰익스피어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전했다.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 런던의 플레이하우스는 여름 뿐 아니라 겨울에도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1603-1613년 플레이하우스의 60%이상의 시간동안 문을 닫아야만 했다. Photograph: Oli Scarff/Getty Images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 런던의 플레이하우스는 여름 뿐 아니라 겨울에도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1603-1613년 플레이하우스의 60%이상의 시간동안 문을 닫아야만 했다. (Photograph: Oli Scarff/Getty Images)

셰익스피어의 극 대사 중 전염병의 상황이 묘사되기도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 초반 머큐시오의 3막에서 "네 집 둘 다 전염병이야!"라는 대사를 남겼는데 당시 전염병 상황의 암울함을 희극적으로 묘사했을 수 있다. 아테네의 타이몬(Timon of Athens)에서도 유배지에 가는 남자가 “너는 강력하고 전염성 있는 열병이다, 아테네는 전염병의 왕관을 써라, 그들을 전염병 있는 곳으로 보내라”와 같은 대사를 읊는다.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에서도 현실의 상황이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문을 닫는 술집들과 사창가를 보이고 있으며, 1606 전염병 창궐시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맥베스(Macbeth)의 연설문 중에는 테러와 악성 전염병의 어두움을 나타내는 듯한 묘사가 담겨있다. 리어왕(King Lear)에서 리어의 오른팔이었던 켄트는 하인 오스왈드에게 "간질병에 전염병이 더해졌다 (A plague upon your epileptic visage!)”는 표현이나 혹은 “이 처진 공기 속에 걸려 있는 질병 (Lear describes the “plagues that hang in this pendulous air)” 과 같은 전염병에 대한 표현들이 조금 더 직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안 맥켈리 (Ian McKellen)가 리어왕을, 대니 웹 (Danny Webb)이 글로스터를 연기하고 있다. Photograph: Johan Persson
▲이안 맥켈리 (Ian McKellen)가 리어왕을, 대니 웹 (Danny Webb)이 글로스터를 연기하고 있다. Photograph: Johan Persson

가디언은 극장이 거의 6개월간 문을 닫았던 1592년 6월 역병이 있는 동안에 셰익스피어가 시를 썼던 것을 언급하며 그 시기에 긴 서술시인 비너스와 아도니스 (Venus and Adonis) 그리고 루크레스의 강간 (The Rape of Lucrece)이 쓰여졌다 전한다. 이는 전염병 시기에 수익을 더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인이 존경받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경력 및 명성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만약 이러한 경력이 없었다면 이 후의 셰익스피어의 훌륭한 작품들인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만약 페스트가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전염병 시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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