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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온유 유아교육 칼럼] 27번째 이야기) 안 하는 습관이 들면 못하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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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온유 유아교육 칼럼] 27번째 이야기) 안 하는 습관이 들면 못하는 상태가 된다.
  • 윤온유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2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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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감정 조절을 너무 못하는 것 같아요"

▲자기조절 능력이 저하되어 나타나는 과잉행동이 잦아질수록 소아 ADHD 증상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출처/픽사베이)

요즘 들어 스마트폰을 보여 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엄마에게 발길질한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민을 털어놓으신다.

영아 때는 어렸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만 5세가 되어 곧 초등학교를 들어가는데 이렇게 자기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상황이라면 학교에서 어떻게 이 아이를 바라볼지 너무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비단 스마트폰을 보고 안 보고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사 습관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반찬이 나오지 않거나 먹고 싶지 않고 놀고 싶을 때, 혹은 먹고 싶은데 먹는 시간이 아니어서 식사를 차릴 수 없을 때도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방바닥을 뒹군다거나 하는 과잉행동을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어린이집 현장에서도, 또 문화센터나 공동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자주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모습들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고 공감대가 형성될 만큼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 잡혀 있다. 이런 문제의 원인이 무조건 미디어 문화와 시대적 변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생각일 수 있다. 여러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아이 중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교육적, 사회적 관점 등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환경에 자주 노출되느냐에 따라 아동의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 (출처/픽사베이)

환경적 요인 : 미디어 문화의 무분별한 정보에 노출되는 환경

먼저 환경적 요인을 살펴보면 미디어 문화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이 문화 속에 노출되는 무분별한 정보의 위험성이라 할 수 있겠다. 미디어 문화가 부정적인 것이 아님에도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좋은 정보만 선택할 수 있는 정보 처리 능력이 미흡한 아이들에게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콘텐츠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에 우리도 모르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간접 지식 습득과 더불어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들과 재미 요소를 통해 교육적 내용을 심어주는 콘텐츠도 너무 좋지만, 광고성을 가진 내용 중 아이들의 연령에 맞지 않는 내용과 장면들이 노출되기도 하고, 키즈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내용도 많기 때문에, 어른들이 일일이 따라다니며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내용이 아이들에게 각인되어 갈지 모를 일인 것이다.

또한 좋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의 뇌 조절 능력과 인지 속도에 맞지 않는 빠른 그림과 내용, 시각, 청각에서 오는 자극에 민감해져 조금만 느려지는 영상이나 내용이 나오면 지루함을 느껴 참지 못하고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님들에게 미디어에 중독되기 전에, 안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이야기 하고 싶다.
처음에는 안 하는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볼 수 있었고, 느린 영상이나 편안한 내레이션이 나오며 안정적인 영상과 음원을 보여 줄 수 있었음에도, 아이가 집중하고 재밌어할 것 같은 빠르고 유쾌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게 되고 보여줌으로써, 조절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결국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밥 먹을 때 안 보여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여 주지 않아야 하고, 양치질할 때 굳이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상황에서는 양육자도 같이 절제하고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 자기조절 능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방법이 된다.
어른이 집에 오자마자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아이가 자신 스스로 그 환경을 이겨내고 안 본다거나 조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안 할 수 있을 때 안 해야, 못하게 되는 상태까지 가지 않는다.

▲ 사회와 가정과 아동이 함께 동행하는 교육이 진행되어야 몸과 정신과 마음이 일치되는 행동 조절이 능동적으로 되어진다. (출처/픽사베이)

교육적 요인 : 아동의 기본 권리의 우선 순위 교육이 필요

두 번째, 교육적 요인을 알아보자.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은 잘못하면 남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부터 잡았다. (필자는 특히나 많이 잡혔다)
내 아이가 잘못했고 안 잘못했고를 떠나서 교육의 흐름이 그러했다. 아이의 행동은 가정교육에서 시작되고 밥상머리 교육이라 해서 잔소리 교육을 많이 들었고, 매도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 교육이 적절하게 아이를 훈육하고 행동 수정을 도와줬던 것도 있지만 반면 아이의 기본적인 인권을 위협하고 심지어 훈육이라는 것을 빌미로 학대의 원인으로 작용했기에 아동 인권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서, 각 가정에, 그리고 기관의 아동을 위해 인성교육 진흥법을 제정하였고, 법적인 규제를 강화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아동의 권익 보호와 인권을 위한 교육적 바람이 어느 순간 방치와 방임간의 중간 사이에서 웃돌고 있는 현실로 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해주어야 할 훈육까지도, 부모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아이가 말하는 아이 표현에 따라 교육이 교육답지 못한 모습으로 비치고, 기관과 교사는 아이를 위해 중심을 다해 수정할 부분을 말해주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어 행동 수정은 기대도 못할뿐더러 기본적인 소통의 부재가 생길까 앞서 걱정을 해야 한다.
조절해 주어야 함에도, 아이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므로 밥 먹기 싫다고 떼쓰면 안 먹여야 하고, 놀이터에서 원에 들어오다가 들어오기 싫다고 하면 언제까지고 기다려야 하는 통제 불능의 상태를 허용해 주는 것이 권리 보호가 되어버린 교육의 변화 또한 적지 않은 어려움으로 자리 잡혀 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다보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다. (출처/픽사베이)

사회적 요인 : 저출산 현상으로 인한 개인주의 증가로 사회 유대관계 형성 미흡

마지막으로 사회적 요인을 살펴보자.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한 교실에 아동은 60명 정도였다. (요즘 이렇게 말하면 '라때'( 라때 : 나 때는 말이지.)라는 꼰대와 비슷한 느낌의 비꼬는 은어로 표현하던데…. 그런 의미는 아니다)
우리 때 이전은 더 많은 아동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뒤엉켜 기뻤다가 슬펐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뭉쳤다가 흩어졌다가 하며, 공동체 생활에서의 자신을 관계를 통해 배워나가고 만들어갔다. 그런데 어느덧 저출산 사회가 도래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학급 인원은 40명이었다가 30명이었다가 이제는 유치원 7살 반의 정원(25명)보다 적은 학교도 있을 만큼 한 교실의 학급 인원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줄어든 만큼 아이들이 첫 사회 기관인 유치원, 어린이집의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학교까지 이어지고 이사하지 않는 한 중, 고등학교까지 지속해서 관계를 맺게 되어 사회 망이 좁고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이런 사회구조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친구를 사귀고 주도적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이제 한두 명의 아이를 낳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사회관계에 함께 참여하게 되고,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사회관계를 맺고 형성하는데 소모해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부모님이 조절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도 하고 절제하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 가운데 자기조절 능력을 원활하게 하는 정신 근육이 발달해야 하는데, 스스로 사회관계에서 정신 운동할 기회가 줄어드니 어느 순간부터는 조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의존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 가정의 원인은 환경에 따라, 지역에 따라, 문화와 사회, 국가에 따라 너무나 상이하기 때문에 각자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고, 필자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거시적으로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저 원인이 답이라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현장에서 아이들의 공통된 상황에 따라 중복되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니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도와주지 않았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고 그것이 성인에 이르기까지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알아보고, 예방할 수 있는 생활 속 습관과 행동 수칙들을 나누어 보자.

▲내 아이만 보면 문제일 수 있지만, 전체를 보면 그것은 아이의 개인 문제보다 사회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환경을 바꾸는 교육과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사회의 협력을 통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출처/픽사베이)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아이였을 때의 시간은 한 시간이 하루같이 길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해도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나를 조절하고 절제하고 아끼고 넘어서야 할 것이 많지 않아서 그저 생각하는 대로 하고, 표현하고 싶은 만큼 표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경험하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절제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넘어서야 하면서도 기다려야 하는 기술을 터득해가고, 그 기술을 터득할수록 사회생활은 되는데, 또 나 자신에게는 아픔과 상처를 주고 남몰래 마음에 붕대를 동여매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아이기 때문에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되어서 자기 조절 능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아이였을 때 부모님이 어떤 상황에 대해 참아야 하고 조절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되게 설명해 주었을 때,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감정을 조절하고 잘 이겨나갈 때의 긍정적인 변화를 알려주었을 때 억울하지 않게 참을 수 있고,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절제를 할 수 있게 됨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에게서 유용하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부터 그냥 무조건 "안돼, 그만해, 참아" 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환경을 정비해 주고, 아이 중심(아이 맞춤이 아닌, 아이를 위한)대화를 통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준비할 자세를 교육하고,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가 배려하고 존중하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게 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만드는 사회로의 시작을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당연히 그 안에서 그러한 아이들로 성장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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