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컬처타임즈

유틸메뉴

UPDATED. 2024-03-29 12:57 (금)

본문영역

[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이번엔 ‘강소영’ 해프닝 … ‘팩트체크’가 중요한 까닭
상태바
[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이번엔 ‘강소영’ 해프닝 … ‘팩트체크’가 중요한 까닭
  •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1.03.04 14:53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또 터졌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 갈등 얘기다. 이번엔 중국 여배우의 이름을 두고 양국 네티즌이 맞붙었다. 지난 2월 말의 일이다. 한국 넷플릭스에 선보인 ‘겨우 서른(三十而已)’이라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장수잉(江疏影)이 장본인이다. 한국 인터넷 포털이 이 배우의 이름을 한국식 독음인 ‘강소영’으로 쓰는 바람에 오해가 비롯됐다. 한국 네티즌이 이 이름을 두고 ‘한국식’이라고 댓글을 달자 중국 네티즌이 발끈했다. 한국인이 한자와 한의학, 단오절, 갑골문 같은 중국 문화를 모두 자기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친다는 반박이었다.

그러자 당사자인 장수잉이 직접 나서 SNS에 자신의 이름이 비롯된 출처를 올렸다.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가 쓴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시는 “성긴 그림자 맑은 물 비스듬히 비추고, 은은한 내음 저물녘 달빛에 떠다니네”(疏影橫斜水清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시구였다. 여기서 첫 두 글자 ‘소영’(疏影)이 바로 장수잉의 이름에 쓰인 한자였다. 두 나라 네티즌이 벌인 이번 설전은 해프닝이었다. 한자와 중국어를 조금만 알 정도면 장수잉의 이름이 한국식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성급한 추측을 제기한 쪽이 머쓱해질 일이었다.

하지만 맥락이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단지 ‘장수잉’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계속돼 온 한-중 문화 갈등이 계속 퍼져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두 나라 네티즌 사이의 문화 갈등은 이효리의 “마오 어때요?” 발언, 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 샤이닝 니키 게임의 한복 아이템 삭제, 김치의 국적 논란, 윤동주 등 역사 인물의 국적 문제 등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음식과 복식, 현대사를 둘러싸고 빈발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우선 두 나라가 건강한 문화 교류를 계속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동아시아 문화를 일구어왔다. 동아시아 문화를 두고 ‘한자문화권’이나 ‘유교문화권’ 같은 표현으로 중국의 지위를 강조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런 표현이 동아시아의 문화가 모두 중국에서 기원했다거나 중국만이 종주국이라는 의미로 오해돼서는 안 된다. 한자문화와 유교문화는 중국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함께 꽃피우고 결실을 맺어 왔다.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이 한자를 꾸준히 사용하고 유교문화를 전승해 온 결과, 그 함의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건강한 교류야말로 동아시아 문화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의 포스터. 맨 왼쪽이 주연배우 장수잉.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의 포스터. 맨 왼쪽이 주연배우 장수잉.

한국과 중국의 문화 갈등은 크게 두 가지 층위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관방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때문에 일어난다. 중국이 우리 고대사를 자국 역사로 포괄하려는 ‘동북공정’이 대표 사례다. 한국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사업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아리랑과 한복, 그네 등 조선족 문화를 국가무형문화유산에 등록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일들은 양국 간 문화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나서서 특정한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승하려는 과정에서 두 나라 사이에 ‘왜곡’과 ‘탈취’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다.

또 다른 하나는 민간의 층위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례들이다. 앞서 예를 든 최근의 사건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그 논란을 자세히 따라가다 보면, 별것 아닌 일을 두고 한쪽 언론이 확대해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소영’ 사건도 한국 네티즌의 댓글 하나 때문에 문제가 됐고, 김치 논란 또한 중국 네티즌의 댓글이 마치 정식 기사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확산되었다. 이런 사례들은 대체로 부정확한 정보에 기대어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일들이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민간 층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프닝 같은 사건들을 대하는 관계 당국의 태도다. 민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외교 당국이 공식적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국 정부는 이런 갈등을 이용해 상대국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작년 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이 나온 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이른바 ‘항미원조’ 전쟁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중국 쪽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격앙된 한국 여론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코로나19가 첨예한 국내 문제로 부상한 시점에 대외적인 공격 대상을 설정할 수 있다는 유혹에 언제든 빠져들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팩트체크’다. 이번 ‘강소영’ 사건이 시답잖은 해프닝으로 끝난 것은 그 사실 관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중국어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가까운 나라라고 해서 “중국을 다 안다”라고 자부하지 말고, 우리와 다른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국을 더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야말로 상호 이해의 첫걸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과 중국은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갈등의 소재도 많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를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문화에 ‘국적’을 부여하고 내 것과 네 것으로 가르려는 시도가 때로는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한 개인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것처럼, 문화 현상에도 이중국적이 있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생각해봄직 하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기 때문에 고체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한자와 유교가 중국의 것만이 아니듯, 액체적 사고는 세계를 보는 우리의 가치관을 더욱 유연하게 해 줄 수 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 독자분들의 후원으로 더욱 좋은 기사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tokki 2021-03-05 15:39:57
흐르는 문화, 액체적 사고방식. 오늘도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호라 2021-03-05 11:12:10
감사합니다! 답답했던 이슈를 콕콕 찌르며 설명해주셔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하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