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은 민수와 알콩달콩한 데이트를 꿈꾸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 누구...”
민수는 자기 절친들과 같이 왔다면서 다른 두 명을 희정에게 소개했다. 남자친구와 오붓한 데이트를 기대했던 희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속상한 마음을 억누르고 데이트를 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데이트에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나온 민수도 미웠지만, 속없이 같이 따라 나온 그 친구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굳어있는 희정의 표정을 본 민수는 왜 그러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아니, 내 친구들하고 그냥 같이 놀면 안 돼? 우리 패밀리를 무시하는 거야? 뭘 그런 것 가지고 삐치냐?”
희정은 더 참을 수 없어서 민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대게는 가족보다 동성 친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함께 절친, 베프, 패밀리로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며 ‘우정 소속감’을 느끼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우정 소속감보다 개인적인 자존감이 더 커지면서 자연스레 이런 행태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청소년기의 ‘우정 소속감’에 집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람의 경우 공통으로 외로움을 지극히 많이 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약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안도감을 느낀다.
이것은 선천적인 기질일 수도 있고, 성장 환경의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우울한 느낌이 들 때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면 우울한 기분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거나, 장례식장에 많은 지인들이 방문해서 상주 가족에게 위로의 말도 건네고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유사한 경험이다. 따라서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연애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이런 성향이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과 동시에 어울리는 게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연애에서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이다. 연애라는 특별한 상황은 남성과 여성이 개인적인 자존감을 가지고 만나서 라포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연애하는 과정에서 친구나 소속감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연애하기로 결심했다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친구와 우정이 정말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연애는 잠시 접어두는 게 서로에게 이롭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