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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조선구마사’의 불편한 진실… 갈 길 먼 한중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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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조선구마사’의 불편한 진실… 갈 길 먼 한중 관계
  •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1.03.31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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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가 한국 TV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 SBS는 2회 방영 만에 편성을 취소했다. 이 드라마는 부엉이가 창덕궁에 나타나 울어대자 제사를 지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짧은 기록에 상상력을 가미한 스토리였다. 부엉이를 ‘죽은 사람의 망령’이라고 여겼다는 태종의 말을 두고 ‘정말로 그랬다면’이라고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부엉이는 정말로 악령이었고, 그 악령이 조선을 정복하려는 상황에 맞서 혈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부제에는 공자가 입에 담지 않았다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장르로 보면 팩션 사극이다.

팩션 사극은 역사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료가 모두 기록하지 못한 여백을 상상의 힘으로 메워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팩션 사극은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장르가 된다. 조선 중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장금’이 대표적이다. 가상의 시공간에서 이야기를 꾸리는 판타지 사극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팩션 사극은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에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는 일이 잦다.

‘조선구마사’도 자유롭지 못했다. 조선 태종 때 충녕대군(세종)이 유럽에서 온 신부를 평안도 의주에서 맞이한다는 설정이 문제가 됐다. 충녕대군은 신부를 기방으로 데려간다. 중국 양식의 건물에 차려진 음식도 온통 중국풍이었다. 월병과 피단, 만두, 양갈비는 물론이고 술을 따르는 술독까지 마찬가지였다. 담당 연출은 “국경지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품을 준비했다”라고 해명했으나 오히려 불난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드라마 작가와 배경에 대한 의혹도 터져 나왔다. 박계옥 작가가 조선족이라거나 드라마가 중국 기업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에 대해서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했고,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가 중국 기업인 ‘쟈핑코리아’ 소속이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작가는 전작인 ‘철인왕후’ 이후 이곳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는 여러 전작에서 이미 중국 관련 소재를 자주 활용해 왔고, 이런 사실이 ‘정황 증거’로 제시되면서 ‘네티즌 수사대’의 뭇매를 맞았다.

SBS의 방영 취소라는 초강수를 전후하여 담당 연출과 작가, 출연 배우(장동윤)까지 줄지어 사과 대열에 합류했다. 작가는 “역사 속 큰 족적을 남기셨던 조선의 건국 영웅 분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한 점에 대해서도 크게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팩션 사극이라는 장르를 강조하려면 차라리 월병과 피단 대신 피자와 햄버거를 차려주었더라면, 시청자들이 웃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연이은 사과에도 시청자는 여전히 불편하다.

'조선구마사' 포스터 / 출처 나무위키
▲'조선구마사'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이번 사태는 한국 네티즌이 콘텐츠가 갖춰야 할 역사적, 윤리적,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민감하게 살피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용자는 이제 단순히 소극적으로 콘텐츠를 즐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안84는 ‘복학왕’에서 여성 주인공이 남성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정규직이 됐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에 적잖은 독자가 항의했다.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기안84는 결국 사과에 이어 콘텐츠를 수정했다. 독자나 시청자는 작가나 방송국이 보내주는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콘텐츠에 개입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수용자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 낡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더 이상 콘텐츠 생산자로서 자격이 없다.

이번 사건은 한국 네티즌이 중국 이슈에 대해 얼마나 예민한지 알게 해준 계기가 됐다. ‘조선구마사’는 최근 잇달아 벌어진 한-중 문화갈등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작년 하반기부터 잇달아 터진 두 나라 문화갈등은 상대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부에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문화갈등을 겪으면서 한국의 대중국 호감도는 바닥을 찍고 있다. 중국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이해는 극에 다다른 성난 파도의 감정 속에 파묻히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빚어진 가까운 원인은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와 그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 발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외교와 군사 문제를 있는 그대로 풀지 않고 문화 문제로 대응한 중국 쪽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한한령은 한국 내 ‘친중’ 여론을 형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중 정서만 잔뜩 키워놓았다. 그 사이 중국은 애국주의와 중화주의 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문제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자국 안에서는 힘 있는 기제로 작동하지만, 중국이라는 경계 밖에서는 세계 곳곳의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애국주의와 중화주의의 바탕에는 자국 문화가 우수하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돼 있다. 이런 욕구는 미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에서 환영받고 있는 것처럼 자국 문화도 세계인이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문화가 세계화하려면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준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배우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마땅한데, 중국은 그런 노력은 크게 기울이지 않으면서 “자국 문화가 우수하다”라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기생충’이나 BTS는 “한국문화가 우수하다”는 선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끊임없는 실패와 도전의 경험을 통해 도출된 결과다.

한국 문화콘텐츠 업계도, 중국 문화콘텐츠 시장도, 한한령이 해제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콘텐츠를 더 많이 수출하려 하고, 중국은 흥미로운 해외 스토리를 더 많이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구마사’는 한한령 이후 변화한 양국 국민의 정서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관찰도 없이 그런 희망을 섣불리 이용한 결과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중국 자본이 한국 콘텐츠에 투자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지금까지는 중국 공산당 때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한국의 콘텐츠 수용자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선구마사’는 이렇게 한국과 중국의 문화갈등의 문제를 넘어서서, 콘텐츠 교역의 과제도 남겨 주었다. 한중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양국 정부가 선포한 ‘한중문화교류의 해’라는 기획도 무색해지고 있다. 생각보다 불편한 한중 관계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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