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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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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
  •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1.05.06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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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한중문화타운' 철회... 한중 문화 교류의 앞날은?

차이나타운은 중국 출신 화교 네트워크의 중심 지역이다. 중국에서 흩어진 디아스포라, 화교는 세계 각지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었고 지역 경제권을 장악했다. 차이나타운은 ‘동향’(同鄕) 네트워크의 확장판이었다. 중국인은 타지로 나가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같은 고향 출신 사람들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현지 경제를 주도한다. 예컨대 1800년대 후반 상하이가 신흥도시로 떠오르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같은 고향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경제를 부흥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런 네트워크는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청나라 말부터 쿨리(cooley)라고 불리는 육체노동자들이 해외로 대거 나가면서 차이나타운의 역사가 본격 시작됐다. 화교는 일찌감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에 정착하면서 고유한 생활 영역을 일구어냈다. 일본이나 미국의 대도시에도 화교가 정착하는 곳마다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화교의 역사는 임오군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란을 진압하기 어려웠던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원조를 요청한다. 조선으로 오는 청군을 따라온 일군의 중국인이 한반도 최초의 화교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 화교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만보산 사건(1931)의 여파로 수많은 화교가 피살되거나 상해를 입었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이 중국인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는 거짓 정보를 우리 언론이 보도하면서 조선 내 화교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화교는 우리에게 공포였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확실하게 우월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설령 사실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믿음을 반복해서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화교에 대한 차별은 계속됐다. 화교가 가는 곳마다 경제권을 장악한다는 인식은 그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다. 박정희 정부는 부동산 소유를 금지했고, 화폐 개혁을 통해 화교의 현금을 벽장 속에서 끌어냈다. 심지어 분식을 장려한다는 이유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에서 볶음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한국은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가 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화교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경제가 어떻게 몰락했는지 살펴보는 보고서를 펴낸 적이 있다. 그 보고서의 이름이 바로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양필승・이정희 지음)다. 한국 사회가 화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인천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 차이나타운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옛 명성에 기댄 인위적 기획과 개발의 결과였다. 최근 서울 대림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동포 거리가 ‘신화교’ 집단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한중문화타운'에 대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해명 (출처: 트위터)
'한중문화타운'에 대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해명 (출처/트위터)

강원도가 ‘한중문화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한중문화타운은 춘천시와 홍천군 일대에 대규모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 전 완공하겠다는 목표는 없던 일이 됐다. 강원도와 민간 사업자인 코오롱이 중국 인민일보 등의 자본을 유치하겠다는 투자 계획까지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의 국책 사업인 ‘일대일로’를 한국에 구현하겠다는 포부도 물거품이 됐다. 한중문화타운 조성에 대한 국민 청원이 65만 명을 넘어서자 강원도와 코오롱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중문화타운의 실패는 한중 문화 교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내 반중 정서가 매우 높은 수위로 고양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중문화타운을 반대하는 여론은 지속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공식적인 명칭이 그렇지 않다고 거듭 주장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여론의 논리는 이미 건강한 한중 문화 교류라는 프레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대일로’를 강조하고 중국 자본을 끌어들인 데 대한 반발이었다.

반대 여론이 불꽃을 뿜기 시작한 계기는 ‘조선구마사’의 친중 ‘역사 왜곡’ 논란이었다. 사업은 사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졌는데,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은 올해 3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조선구마사’가 이 사업에 대한 반발 여론을 점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되어 온 한중 문화 갈등이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중국의 한한령(2016년)과 동북공정(2002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한한령을 비롯한 중국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중국이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이웃 나라와 문화의 장벽을 쌓으면서 자국 문화의 우월성에 도취되어 있을 때, 장벽 바깥에서 중국을 향한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중국의 자국 중심주의는 내부 여론을 결집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외 관계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주변 국가와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중국에 대한 신뢰도 또한 그만큼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심각하다.

반중정서는 이제 중국 문화의 전초기지라고 불리는 ‘공자학원’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다. 이대로라면 “중국은 언제나 싫다”는 정서가 더욱 만연해질 것이다.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를 자임하면서 화교를 배척했던 우리는 결국 오랜 시간을 거쳐 ‘다문화’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중국은 변수가 아닌 언제나 상수였다. 상수로서의 중국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더욱 정교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완전한 배제나 맹목적 추종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정부와 민간, 학계와 언론은 한국과 중국의 건강한 문화 교류를 어떻게 회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한령 때문에 단절되었던 공식 교류를 회복해야 한다. 끊어졌던 전문가 교류를 적극적으로 다시 이어가야 한다. 세미나와 포럼을 열어서 상호 이해와 인식을 위한 다양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중국을 향해 더 당당한 목소리로 담장을 부수고 빗장을 열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도 그만큼 중국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차이나타운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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