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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공주 송산리고분군 정밀조사로 41기 고분 존재 가능성 추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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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공주 송산리고분군 정밀조사로 41기 고분 존재 가능성 추가 확인했다...
  • 조윤희 기자
  • 승인 2019.07.17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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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 고분군을 우리 손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해서 더 의미가 커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웅진도읍기의 왕실묘역인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에서 새로운 고분의 유존 가능성을 다수 확인했다. 출처/ 문화재청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웅진도읍기의 왕실묘역인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에서 새로운 고분의 유존 가능성을 다수 확인했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웅진도읍기의 왕실묘역인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에서 새로운 고분의 유존 가능성을 다수 확인했다. 금번 조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송산리고분군의 중장기 학술조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첫 정밀현황조사로, 크게 3단계(기초자료 조사‧현장(지표)조사‧과학적 탐사와 측량조사)로 나누어 진행했다. 지난 2~3월에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가 시행됐으며, 4월에 시행한 고고학 지표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 가능성이 추가로 확인딘 결과다.

문화재청은 “무령왕릉에 사용된 총 7,927점의 벽돌 중 ‘중방’명 벽돌은 30점에 불과하다. 벽돌의 크기와 글자의 위치로 볼 때, 이번 수습품은 긴 벽면에서 창문모양을 장식한 8점과 유사하다. 이번에 수습된 벽돌이 발견된 위치가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의 남쪽 80m 지점이었고,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벽돌무덤인 17호분의 추정 위치와도 70m 이상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벽돌이 발견된 일대에 또 다른 벽돌무덤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면서 “6월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의 지하물리탐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일제강점기 이후 위치를 알 수 없었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고분의 위치를 표시한 사진자료와 현재 촬영한 사진자료를 비교‧검토하여 확보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이들 고분들의 현재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사과정에서 지표면에서 수습된 ‘중방(中方)’명 벽돌도 주목할 만하다.”고 전했다.

특히 무령왕릉과 6호분은 틀로 찍어낸 소성(燒成)벽돌을 쌓아 터널형태의 무덤방을 만들었는데, 아치형 구조를 시공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벽돌을 제작했으며, 대부분 동전과 연꽃 등 장식용 문양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문양이 없는 대신 대방(大方), 중방, 중(中), 급사(急使) 등 글자를 압출(壓出)한 벽돌들도 일부 확인됐는데, 이 글씨들은 벽돌이 사용된 위치 등 쓰임새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많다고 도전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한 조사는 그동안 주로 일본인에 의해 조사되었고, 이후로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송산리 고분군을 우리 손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면서 이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에서 나온 인골을 연구하여 백제 무왕과의 개연성을 확인하였으며, 현재 백제 능묘제도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과 공주시의 ‘항공라이다측량과 지하물리탐사를 이용한 공주 송산리고분군 유적정보 고도화사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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