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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이지선 와인 칼럼] 프랑스 와인, 미국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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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이지선 와인 칼럼] 프랑스 와인, 미국에 지다.
  • 이지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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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와인이 지금의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게 된 사건 '파리의 심판'
▲ 1976년 일어났던 '파리의 심판' 사건을 최후의 만찬으로 비유한 그림 (허핑턴 포스트)
▲ 1976년 일어났던 '파리의 심판' 사건을 최후의 만찬으로 비유한 그림 (출처/ 허핑턴 포스트)

언제 마셔도 부담 없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접근하기가 편해 한국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와인양조 품종 ‘까베르네 소비뇽’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위상을 드높인 1등 공신이다.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레드 와인들은 풍부한 일조량으로 포도가 잘 익어 타닌은 거칠지 않고 부드러우며 당도가 높아 덩달아 알코올 도수도 높다. 덕분에 와인 초보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 산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가 처음부터 이렇게 명성이 높은 와인 산지는 아니었다. 과거부터 최고의 와인 산지는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전통적 와인 산지인 유럽이었으며 특히 프랑스 와인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최고의 와인 산지로 자리매김 해왔기에 ‘와인’이라 하면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떠오른다. 나 또한 ‘와인을 한 번 사서 마셔볼까?’ 하고 와인샵에 가면 와인은 잘 몰랐어도 프랑스 와인이 유명한 것은 알았기에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고집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와인은 저렴한 가격대의 저급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지의 이미지가 강했고 유럽에서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와인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는 그것을 ‘파리의 심판’이라고 부른다. 

▲ 캘리포니아 와인 시음회의 주최자, 스티븐 스퍼리어 Steven Spurrier '파리의 심판' 이야기가 담긴 그가 출간한 책을 들고 있는 모습 (출처: 와인스펙테이터)
▲ 캘리포니아 와인 시음회의 주최자인 스티븐 스퍼리어 Steven Spurrier, '파리의 심판' 이야기가 담긴 그가 출간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출처/와인스펙테이터)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와인샵과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당시 34세의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 Steven Spurrier 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마실 때마다 좋은 와인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프랑스에서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수입량도 적었을 뿐 아니라 평가절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프랑스 와인에 비해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확인하고자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벤트를 개최한다. 

▲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는 모습 (WSET global)
▲ 와인에 옷을 입혀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는 모습 (출처/ WSET global)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말 그대로 어떤 와인인지 평가자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선입견 없이 시음하게 하는 테이스팅을 말하며 실제로 국내에서도 와인 강의를 들으러 가면 이렇게 연습하는 곳이 많다. 소믈리에 자격증 시험을 볼 때도 이론은 물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 식별 능력을 평가한다. 

▲ 평가단 중 한 명이었던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 꽁띠'를 만드는 오베르 드 빌런 Aubert de Villaine (출처: 더 드링크 비지니스)
▲ 평가단 중 한 명이었던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 꽁띠'를 만드는 오베르 드 빌런 Aubert de Villaine (출처/더 드링크 비지니스)

스티븐 스퍼리어가 주최한 이 시음회는 가벼운 시음회라고 부를 수 없었다. 초대된 평가단들이 프랑스 와인업계의 대들보 같은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로마네 꽁띠’를 만드는 오베르 드 빌런 Aubert de Villaine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 시음 품목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레드,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캘리포니아의 그것이었다.

 

▲ 1976년 시음회에 참석했던 실제 평가단들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 평가를 하고 있는 장면 (출처: Vine Pair.com)
▲ 1976년 시음회에 참석했던 실제 평가단들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 평가를 하고 있는 장면 (출처/ Vine Pair.com)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의 와인들은 시장가에서도 10배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차이 나는 와인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평가단들은 당연히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우세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진행된 뻔한 전개였다면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평가단들은 시음한 와인에 20점 만점의 점수를 매겼고 결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캘리포니아의 완승이었다. 레드 와인에는 캘리포니아의 ‘스택스 립 와인 셀라’가 화이트 와인은 ‘샤또 몬텔레나’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 레드 와인 순위 (1위~5위)
  1. 스택스 립 와인 셀러(Stag’s Leap Wine Cellars) 1973(미국)
  2. 샤토 무통 로쉴드(Château Mouton Rothschild) 1970(프랑스)
  3. 샤토 오브리옹(Château Haut Brion) 1970(프랑스)
  4. 샤토 몽로즈(Château Montrose) 1970(프랑스)
  5. 샤토 레오빌 라스 카즈(Château Leoville Las Cases) 1971(프랑스)
  • 화이트 와인 순위 (1위~5위)
  1. 샤토 몬텔레나(Château Montelena) 1973 (미국)
  2. 룰로, 뫼르소 샴므(Roulot, Meursault Charmes) 1973(프랑스)
  3. 샬론 빈야드(Chalone Vineyard) 1974(미국)
  4. 스프링 마운틴 빈야드(Spring Mountain Vineyard) 1973 (미국)
  5. 조셉 드루엥, 본 클로 데 무슈(Joseph Drouhin, Beaune Clos Des Mouches) 1973(프랑스)


레드와인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그리고 2등부터 4등까지를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의 와인들이 등극했다. 무려, 샤또 무통 로칠드, 샤또 오브리옹 등의 1등급 와인들이었다. 화이트 와인 또한 5위 안에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3개나 포함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평가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자신들이 평가한 평가지를 분쇄기에 갈아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실제로 평가단은 평가에 문제가 있다며 항의했고 프랑스 와인들은 더 숙성되었어야 했다며 항변했다. 
당시, 스티븐 스퍼리어가 초청한 많은 기자 중 타임(TIME) 지의 조지 테이버 George M. Taber 라는 단 한 명의 기자가 참석했었고 그가 보도한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특히 프랑스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 시음회에 참석했던 조지테이버가 '파리의 심판'을 보도한 1976년 출간된 타임지(출처: San Francisco Chronicle)
▲ 시음회에 참석했던 조지테이버가 '파리의 심판'을 보도한 1976년 출간된 타임지(출처/ San Francisco Chronicle)

이후 참여했던 평가단들은 인터뷰는 회피했으며 한동안 근신해야 했을 정도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프랑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다루지 않고 무시했지만 몇 달 후 르 피가로 Le Figaro 와 르 몽드 Le Monde 신문사에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며 우스운 결과'라는 식의 기사를 내놓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와인은 세계적인 인정과 동시에 고급 와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특히나 자국민들의 자부심이 컸을 테다. 또한, 이 시음회는 그리스 신화에서 목동 파리스가 최고의 여신들인 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를 놓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겨뤘던 ‘파리스의 심판 judgement of Paris’의 이름을 따 ‘파리의 심판’으로 불리게 된다.

▲ '파리의 심판'을 주제로 한 영화, 와인미라클 / 영화 '해리포터'의 스네이크 교수로 잘 알려진 故앨런 릭먼이 주연을 맡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 '파리의 심판'을 주제로 한 영화, 와인미라클. 영화 '해리포터'의 스네이크 교수로 잘 알려진 故앨런 릭먼이 주연을 맡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파리의 심판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한국에서 ‘와인 미라클’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였고 이 사건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해리 포터의 스네이크 교수 ‘앨런 릭먼’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는 국내의 많은 와인애호가들이 한 번쯤은 봐야하는 영화로 꼽기도 한다. 파리의 심판은 잘 만들어진 캘리포니아의 와인들이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이 빛을 발하게 했고, 많은 소비자들이 캘리포니아 와인을 더욱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도 이런 캘리포니아 와인을 즐겨 마시며 특유의 매력과 우수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평생 프랑스 와인을 마시고 심지어 만들어 온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낳았는지... 채점 항목의 오류였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캘리포니아의 와인들이 그렇게 압도적인 위치에 올랐던 것일까.

후에,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같이 마시게 된다면 파리의 심판의 평가단이 된 듯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평가해보는 것도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재미있는 경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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