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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정치적'인 것과 '정치'의 차이,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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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정치적'인 것과 '정치'의 차이,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 이산 기자
  • 승인 2020.03.11 11: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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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장 뤽 고다르 감독
그의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를 오마주
대중 및 현실과 괴리된 '정치'는 실망감만
아내 안느 카리나의 시점에서 드러나다

※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리 없는 그 이름이다. 19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고다르는 프랑스 영화감독 집단인 누벨바그의 대표적인 일원이었다. 그는 누벨바그의 주요 지향점인 인간성의 해방 및 자유 등을 주제로 다루며 야외촬영, 후시녹음 등등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특히 프랑스의 68혁명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정치적이고 혁명적 메시지를 영화에 담기를 좋아했다.

고다르는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로 시작해 ‘여자는 여자다(Une Femme Est Une Femme, 1961),’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Sauve Qui Peut(La Vie), 1980)’ 등 여러 대표작들을 연출했다.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그는 최근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 3D, 2014)’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이미지 북’이란 영화로써 또 한 번 칸 영화제에 진출한 바 있다.

이처럼 감독의 위치에서 수많은 영화를 만들었던 그가 이번에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물론 고다르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 3월 19일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에서 배우 루이 가렐이 장 뤽 고다르로 분하였다. 그리고 그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안느 카리나를 배우 스테이시 마틴이 연기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실제로 어떤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 영화를 ‘멜로/로맨스’ 장르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이 영화가, 마치 장 뤽 고다르가 만든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시나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다만, 배우자라는 관계에서 가장 친밀하고 세밀하게 그를 탐구할 수 있었던 존재인 안느가 이 영화에서 적합한 화자로서 필요했을 뿐이다.

한편, 이 영화가 ‘정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 이념이나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치적’이다. 영화에서 고다르는 혁명과 노동해방의 가치에 사로잡혔으나 이와 모순적이게도 부르주아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자신에 처지에 고통스러워한다. 또한 노동자의 평등은 추구해도 정작 여성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괴리가 드러난다. 이 때,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언정 스스로 ‘정치’에 뛰어들진 못했던 고다르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우리는 고다르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모습에서 점차 그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는 안느의 태도에도 집중해야 한다. 사실 중국의 혁명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어 몰래 잡지책을 읽다가 고다르가 집에 오자마자 이를 혁명가에 관한 책으로 바꾸어버리는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그뿐만 아니라 고다르의 말에 항상 미소를 짓던 안느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고, 영화 중반에 이르러 안느가 결국 울게 되는 것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이탈리아 초대석에서 고다르의 발언을 듣고 표정이 굳어진 안느(사진/출처=이수C&N)
▲이탈리아 초대석에서 고다르의 발언을 듣고 표정이 굳어진 안느(사진출처=이수C&E)

그렇다면 안느는 고다르의 무엇에 실망했을까? 영화 속에서 고다르는 과거 68혁명에 압도되었다가 점차 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때 즈음 안느에게 새로운 영화 집단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다르는 죽었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안느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방금 전에 고다르는 죽었다고 했으면서 왜 다시 새로운 영화 집단을 만들어?”라고 반문한다.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이후 이탈리아의 어느 초대석에서 고다르는 이전까지 자기가 만들었던 영화를 “쓰레기”라 표현하며 행사장을 박차고 나간다. 그러고 난 뒤, 안느에게 집에 가자고 얘기하였으나 안느는 “싫어.”라고 대답한다. 결국 안느는 고다르 스스로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에,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실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객들은 안느의 감정선을 타고 함께 고다르에게 실망하게 된다. 이는 안느가 고다르를 사랑했고, 또 그와 결혼했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다르를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그가 보여주는 모순된 태도를 적나라하게 들추고, 관객은 이것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단순히 ‘멜로/로맨스’ 장르로 분류될 수가 없다. ‘정치적’인 것과 실제 ‘정치’를 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는 문제작이다. 예컨대, 68혁명의 시위에 참여하면서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라고 말하던 고다르가 이후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모습을 보일 땐, 우스꽝스러운 배경음악이 깔린다. 이처럼 모순적일 수가 없다.

▲68혁명 시위대의 틈에서 도망가는 고다르(사진/출처=이수C&N)
▲68혁명 시위대의 틈에서 도망가는 고다르(사진출처=이수C&E)

겉과 속이 다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모순이 결국 타인과의 괴리를 낳을 때, 이것은 진정으로 문제가 된다.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영화 ‘중국 여인’이 개봉한 후, 고다르가 “마오쩌둥마저 이 영화를 싫어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러한 이유에서 인상적이다. 아울러 68혁명의 시위 때문에 직원이 음식점의 셔터를 내리자 이에 “잘됐군요.”라고 말한 손님에게 고다르가 “저렇게 사느니 창녀와 결혼하는 것이 났겠어.”라는 비난을 퍼붓고, 여성인 안느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되묻는 장면 역시 그러하다. 그는 ‘정치적’이었을지언정 나 홀로 ‘정치’를 할 뿐이었다.

정치가 무엇인지를 둘러싸고는 수많은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정치란 사회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며 그렇기에 개별적인 타인을 포함한 대중, 다수를 고려해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언급하며 연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국민’과 함께하는지는 따로 판단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이 영화는 안느라는 효과적인 화자를 통해 고다르의 삶을 조명하면서 ‘정치’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정치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4월에는 총선이 열린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근거로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만 할까. 이 영화가 이러한 고민에 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포스터(사진/출처=이수C&E)
▲영화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포스터(사진/출처=이수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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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2021-06-20 01:13:12
스테이시 마틴 배우가 연기한 배역은 안나 카리나가 아니라 안 비아젬스키 입니다.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와 안 비아젬스키의 이야기입니다...

안동우 2020-03-11 12:40:37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꼭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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