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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우 감독의 영화 칼럼] 천막극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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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우 감독의 영화 칼럼] 천막극장의 추억
  • 박광우 감독
  • 승인 2020.08.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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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부터 남사당패 같은 풍물놀이단들이 전국을 유랑하며 공연을 다녔다. 그들의 공연은 늘 새롭고, 시대를 풍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공연의 내용 속에 숨은 촌철살인의 의미를 분석할 줄 아는 백성들은 크게 감동하고 기뻐했다. 세상을 유랑하는 그 남사당패들은 현대의 SNS처럼, 세상에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이것이 근대에 와서 유랑극단이 되었고, 유랑극장으로 발전했다.

70년대 말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지금은 사라진 유랑극장은, 여러 이유로 극장에 가기 힘든 전국의 오지를 찾아, 어쩌면 평생 활동사진 한번 못 볼 시골 사람들에게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드라마를 전하고, 발전하는 세상의 문명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첫 경험한 유랑극장은 60년대 중반, 5~6세 무렵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의 천막극장이었다. 
한여름 밤, 학교 운동장 구석에 서있는 300년 된 느티나무 몸통에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 있고, 천막에 갇힌 동네 사람들과 나와 동네 아이들은 움직이는 그림이 투사되는 스크린을 통해 신비의 세계를 접하며 일희일비 감동했다. 하지만 아주 열악한 영화관람 환경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광목 스크린이 흔들려 영화의 내용도 흔들렸고, 관람 도중에 비가 내리면 영화는 그대로 중단되었다. 상영 도중 부지기수로 필름이 끊어지고 찢어지기도 했고, 입장료가 없었던 아이들이 스크린 밑으로 기어들어오는 바람에 영화는 번번이 중단되었다.

▲1964년 개봉한 한국영화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의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하지만 우리들은 미국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를 보고 미국이란 나라를 동경했었고, 권총이란 무기의 매력을 느꼈다. 한국 영화 ‘빨간 마후라’를 보고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의 실체를 알고 비행기 조종자를 꿈꿨다. 또한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고 가족과 엄마의 소중함을 체감하며 펑펑 울었으며,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고 무덤이란 것이 무서운 놀이터인 것을 알았으며, ‘타잔’을 보고 다양한 동물의 세계와 원숭이를 알았다.

▲영화 '타잔' 스틸컷
▲밴 다이크 감독의 1932년 영화 '타잔' 스틸컷(출처/네이버 영화)

한편의 영화가 주는 힘은 어린 우리들에게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장난감 가게의 권총은 순식간에 동이 났고, 한동안 모든 동네는 아이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최애 놀이터 뒷동산의 무덤들은 오랬동안 썰렁한 적막이 감돌았고, ‘타잔’을 흉내 내던 우리들은 밤나무 가지에 묶인 새끼줄에 매달려 “오~ 오~ 오~”하는 괴성을 지르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온 동네 아이들의 이마가 깨지고 온몸에 붕대가 감겼다. 이것이 우리 어릴 적 천막극장 영화의 힘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작로엔 파란 달빛과 별빛이 쏟아졌다. 개울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는 시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음악처럼 아름다웠고, 징검거리는 엄마 등에 업혀 금세 꿈나라로 가, 다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 집에서 진짜 잠들 때까지 아까 봤던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이 되었다. 나와 아이들은 천막 영화 때문에 큰 세상의 정보에 접할 수 있었고 별별 꿈을 꾸었다. 

그 어린 시절 보았던 천막 영화의 잔상은 참 오래도 갔다. 빨리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날이 늘었다. 빨리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푸른 창공을 날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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