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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네 번째 이야기) 꿈을 꿀 수 있는 아이, 꿈을 줄 수 있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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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네 번째 이야기) 꿈을 꿀 수 있는 아이, 꿈을 줄 수 있는 어른
  • 윤온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5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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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 출처 / 픽사베이 >


“너는 커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한참 동안 아이는 생각한다.
그리고 옆에서 어머니가 대신 말씀하신다.


"얘는 하고 싶은 게 없대요. 되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요."

아이를 보니, 생각하고 있다가 어머니를 한번 보고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고 싶은 게 많은가 보구나."

라고 대답해주었다.

 

< 출처 / 픽사베이 >

 

시대가 시대니만큼 많은 정보가 폭포수같이 쏟아져 나와, 그 속에서 속된 말로 "아이템"이라는 유익한 정보를 잘 건져야 할 만큼 분별하기 쉽지 않은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사회 속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들으며 그중에 좋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적용하며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진로를 탐색할 기회 중에 하나로 여러 다양한 분야의 학원을 보내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숨겨진 달란트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 출처 / 픽사베이 >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스스로 꿈을 찾을' 필요를 느낄 시간이 없다.
꿈을 찾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탐색할 시간이 필요한데,  탐색할 시간을 찾기 전에 어딘가 많이 다니고, 보며, 듣고, 적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이 요구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 5~6학년부터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했었다면 지금은 사교육을 접하는 나이도  현저히 낮아져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유치원, 어린이집에서도 예체능 외에 실제 언어, 수학 등 관련된 학원을 별도로 더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통계청
<출처 / 통계청>

통계청의 조사를 보면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사교육비가 늘어남에 따라 아이들의 사적인 시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어서 진행하는 사교육이라면 당연히 아이의 재능에 시너지를 더하기 위하여 아이의 꿈을 위하여 사교육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가 만들어 주는 진로', '아빠가 찾아주는 직업', '없으면 달라하면 되는 돈'의 개념으로 각인되어 가고 있을지 모른다.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아이들의 대화에서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이 하고 싶어서, 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 대신 부모의 소득 수준, 차 브랜드 가치, 집 평수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의 자랑거리가 되어 그것으로 싸우고 비교하는 것을 많이 듣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의 역할놀이에서 끝장 드라마의 개념을 따라 하는가 하면, 부모님들의 대화, 혹은 엄마들의 카페 대화들을 따라 하는 일도 있어 직접 보고 듣지 않았음에도 어떤 내용이겠거니 짐작할 때도 많았다.

결국, 아이들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보다 '어른들의 대화' 속에 재미를 찾는 이야기가 더 많아진 것이다.
 

< 출처 / 픽사베이 >

 

아이들 스스로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 꿈꿔주는 세상 "속에 들어가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며, 부모나 환경을 넘어서는 도전보다 그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안주해가려는 모습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막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되고 싶은 거 없어요. 그냥 살면 되죠"
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라는 대로 해야 하므로 나의 것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꿈을 빼앗긴 아이'로 멈춰버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학원을 그만두고, 아이가 하라는 대로 무조건 다 하게 해야 하는 건가?
그것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건가?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우리의 노력이 아이에게 문제를 주는 건가?

< 출처 / 픽사베이 >

아니다.
단지 우리의 노력이 진정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고 경험하게 하는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버려두거나 내버려 두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시간에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임무들이 있다.

먼저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해보고 싶은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찾아주는 것보다 찾아보게 하는 것을 해보자.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할 때는 그 누가 뭐라 하고 옆에서 난리가 나도 집중하며 진행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른들에게는 싫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는 굉장히 동적인 데 비해 아이는 정적일 경우,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노는 것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반대로 부모는 매우 정적인데 비해 아이는 동적일 경우, 아이가 방방 뛰며 사람들 속에서 사교적으로 노는 것이 부잡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한 제재, 강압적 반대 등을 하게 되면 아이는 당연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잘못된 것'으로 각인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시간을 주자.

그리고 두 번째, 아이가 찾아내는 시간 동안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아이들이 어떤 것에 집중하며 무엇을 할 때 눈이 반짝이는지, 아이들이 가진 행동이 정적인지 동적인지, 그 아이가 가슴 뛰게 설레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관찰하면 된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아이가 가진 집중력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즉, 아이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잘하는 것이 일치하는지를 보면서 아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그것이 진로에도 도움이 될지, 혹은 진로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관계에 도움이 될지 등을 통합적으로 생각하며 관찰하는 것이다.
보통 그것을 교육기관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기관은 교육기관으로서 그 아이를 보고 판단하지만, 부모는 또 다르게 아이의 내면에 숨겨진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 자리는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그 시간, 그때 아이가 가장 집중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겠다.

마지막으로 관찰하여 발견될 때, 반드시 기록하여 아이의 성장기마다 변화를 보면서 그 변화 속에서도 아이가 꾸준히 지속해서 좋아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순위별로 점검해두자.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바로 그 부분에 집중하여 무조건 "해야만 하는 것"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우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그것이 직업으로 연결되면서 "해야만 밥벌이를 하는 것"으로 변하면 이것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하기 싫은 것으로
변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이 어른일 경우는 또 다른 것을 선택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의 연속으로 볼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선택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하고 싶은 것'에서 '엄마가 하게 하는 것'으로 변하다가 '해야만 하는 것'이 되고 '하기 싫은 것'으로 자리 잡는다.

이 부분들은 먼저 취학 전에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발견해가는 것이 좋으며,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학원에 다니거나 개별 시간을 가질 때도 지속해서 아이와 대화하며 진행해가는 것이 좋다.
특히 학원에 다니면 그 학원의 과목이 어느 정도 흥미가 있는지,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등을 아이와 함께 아이의 의견을 중심으로 대화하고 기록해두는 것이 좋겠다.

< 출처 / 픽사베이 >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누군가가 꿈을 물어보면
대답을 머뭇거릴 때가 있었다.

그것은 없어서라기보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꿈이 너무 많은 데 무엇부터 열거해야 할지 몰라서이거나 혹은 내가 말하는 꿈이 맞는 건지, 틀린 것인지 스스로 점검해보았거나, 너무 큰 꿈이어서 말하면 비웃을 것 같거나 반대로 너무 작은 꿈이어서 부끄러웠을 경우였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저 대답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은 어렸을 때, 무엇이 되고 싶었는가?"

우리도 아이였을 때, 어떤 때에 따라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하고 때론 부끄러워 숨기도 했던 '미래의 나를 말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 아이들의 지금을 이해해주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꿈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 '스스로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 '스스로 이해해 갈 수 있는 성찰' 을 선물해주자.

그것은 돈도 아닌, 장난감도 아닌, 교육 콘텐츠도 아닌 아이들이 마음껏 찾아볼 수 있고, 도전해 볼 수 있고 자신을 이해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꿈을 찾는 시간을 주는 우리도, 아이와 함께 꿈을 만들어 간다면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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