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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안방 시청용 오페라는 따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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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박보미 칼럼] 안방 시청용 오페라는 따로 있나?
  • 박보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21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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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안방 오페라’의 창시자 메노티(Gian Carlo Menot´ti 1911~2007)

예술은 기본적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예술가들과 예술가들이 만나 예술을 생산하며 소비한다. 때문에 관객과 청중이 없는 예술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반년 이상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는 또다시 대면 예술 행위에 큰 제동을 걸었다. 만나고, 접촉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공연장과 전시장은 문을 닫고, 예술가들도 당분간, 아니 어쩌면 아주 긴 시간 관객을 만나지 못한 채 우리들만의 예술로 고립 될지도 모른다.

20세기 음악의 시작
17~18세기는 조성(調聲) 이 확립되어 음악으로 사람의 감정과 표정을 만들 수 있도록 서양음악의 구조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성체계는 19세기 말부터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여, 조성이 상실된 무조음악(atonal music, 無調音樂)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는 예술 전반에서 전통적인 미의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음악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예술이 최종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미래’라는 새로운 명제(proposition, 命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진정한 전통이란 끝나버린 과거의 증인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자극하고 가르치는 살아 있는 힘이다”   

사실, 무조와, 극심한 변박, 끊임없는 양식의 변화를 가진 20세기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청중과 대중의 거리를 멀게 하기도 하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인지, 사람을 위한 예술인지‘ 청중과 관객이 멀어지기 시작하여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라지는 양상도 있었다.
음악은 음악가들의 전유물인가? 음악을 좋아하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는 말들도 나왔다.

잔 카를로 메노티/출처 OPERA 366 촬영
▲사진은 잔 카를로 메노티(출처/ OPERA 366)

‘안방 오페라’의 창시자 메노티(Gian Carlo Menot´ti 1911~2007)

오페라를 안방에서 시청한다? TV와 라디오를 위한 오페라가 있었다? 오페라하면 밀라노 스칼라 극장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아니면 예술의 전당 같은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에만 올라가는 장르가 아니었나, 할 수 있지만 20세기 초 세계 최초의 안방 오페라 작곡가가 있다.

그가 바로, 이탈리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인 ‘잔 카를로 메노티’다.
그 당시(제1차 세계대전 말부터) 유럽과 미국에는 전통을 부정하는 예술의 탄생과 인기로 인해 전통의 상징인 오페라 또한 푸치니 이후로 그 명성을 잃고 점차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이때 이탈리아 태생인 메노티는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오페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달랐기에,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20세기의 신기술이었던 TV와 라디오에 ‘오페라‘라는 장르를 결합하여 최초의 방송용 오페라를 창작하였다.

메노티는 안방으로 오페라를 들이기 위해 현대적인 양식을 고민하고, 시청하고, 청취하는 사람들을 고려해 짧은 시간 안에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전의 귀족 중심, 영웅, 신화, 비극의 사랑, 신분 등을 주제로 한 오페라와 달리, 대중적이면서, 드라마적 재미와 공감을 지닌 내용을 만들었다. 물론 처음 작품이 흥행한 것은 다소 파격적 이면서도 희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냈다.

공식 첫 작품인 <아멜리아 무도회에 가다 Amelia al Ballo 1934>는 아멜리아는 무도회장에 가기 위해 분주한데, 남편이 들어와 편지를 보이며 누가 보낸 것이냐 다그친다. 아멜리아는 위층 청년이라 말하고, 남편은 그를 총으로 쏠 기세로 올라간다. 그 사이 아멜리아는 청년에게 알리고, 청년은 발코니를 통해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다시 돌아온 남편과 마주한 청년이 언쟁을 벌이는 사이 아멜리아는 총을 든 남편을 화병으로 때려 쓰러뜨린다. 경찰을 부른 아멜리아는 도둑을 치려다 남편을 잘못 쳤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 도둑은 밧줄을 타고 내려온 위층 청년이 된 것이다. 남편은 병원으로 청년은 경찰서로, 아멜리아는 잘생긴 경찰의 팔짱을 끼고 무도회에 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10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오늘날 인기 드라마라고 해도 시청자의 흥미를 끌만한 단막극이다. 그 당시 다소 파격적이었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내용과 아름다운 아리아의 결합으로 성공하여 1938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설정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그 후 NBC방송에서 ‘대중적이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메노티에게 라디오방송용 오페라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이렇게 탄생된 오페라가 <도둑과 노처녀1939>이다. 이 오페라가 최초의 라디오용 오페라 작품이 되고, 초연 후 반응이 좋아 1941년 필라델피아 극장에 올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TV와 라디오 오페라가 사랑을 받으면서, 메노티는 내용을 좀 더 밝고, 희망적이고, 기쁨과 질투가 적절하게 스며있는 모든 계층과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힘쓴다. 오페라의 기본적 양식과 음악적 양식은 전통 오페라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내용면에서 사람 냄새가 풍기는 주제로 ‘TV 오페라’라는 또 하나의 장르 즉, 메노티 식의 ‘사실주의 오페라’를 탄생 시킨 것이다. 이후 메노티의 TV 오페라는 유머와 즐거움도 있지만, 사회를 풍자하기도 하고, 안방에서 빠질 수 없는 눈물을 빼는 무겁고, 슬픈 내용의 작품도 만들며 ‘20세기 대표 오페라 작곡가’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반열에 올랐다.  

예술은 이처럼 변화되는 사회에 맞추어 그 시대를 반영하고, 전통에 현실을 더해 어울리게 만들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인기가 시들해 사라질 위기에 있던 오페라를 TV와 수신기라는 신기술을 입혀, 불씨를 다시 살려 주었기에 지금 우리들도 17~19세기의 오페라 대작들을 알고,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다다이즘예술 작품, 만 레이_밧줄의 댄서 1916년, 뉴욕 현대미술관/출처 미술대사전(용어편)
▲다다이즘예술 작품, 만 레이 '밧줄의 댄서' 1916년, 뉴욕 현대미술관(출처 /미술대사전(용어편))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여태껏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며, 나름대로 어떤 예술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회의 분위기에 반대되는 전통 오페라로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을 신기술과 양식의 변화로 다시 가까워지게 만든 것처럼, 우리들도 미래 예술에 대한 고민, 즉 “더 이상 접촉’이 허용되지 않는 비대면 사회에서 예술을 어떻게 지키고, 발전시킬지, 방역체계에 갇혀 포기하고, 주저앉지 말자.
앞으로 더 펼쳐질 예술 다양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과 기술 연구로 더 다양하고 기발한 작품들을 만드는 예술인들의 멋진 모습을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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