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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뮬란’은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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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뮬란’은 돌아올 수 있을까?
  •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0.09.0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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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뮬란’은 돌아올 수 있을까? 월트디즈니가 새롭게 만든 실사영화 ‘뮬란’의 개봉이 또 미뤄졌다. 올해 3월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9월 초로 연기됐다가,  셋째 주에 다시 날짜를 잡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계속 기승을 부린다면, 그때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뮬란’이 지금 돌아올 수 없는 이유는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려워서다. 감염은 뮬란에게 치명적인 경제적 상처를 안길 테니까 말이다.(실사영화 ‘뮬란’은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들었다고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산업이 전에 없던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개봉은 연기됐다.

‘뮬란’은 12년 전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저작권이 사라진 세계의 신화와 전설을 영화로 만들고, 다시 글로벌한 유통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월트디즈니의 전략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였다. 애니메이션 ‘뮬란’은 고작 330글자 밖에 안 되는 중국 서사시 ‘목란사’(木蘭辭)를 세련된 우리 시대의 콘텐츠로 재연했다. 무슈와 크리키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승리를 보여준 캐릭터였다.

신나는 음악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세계의 환대를 받았다. 남장을 한 여성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여성주의’의 승리라고 읽어내는 입장마저 있었다. 중국 전설을 가져다가 미국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대폭 원작을 변형해 놓았으니 ‘오리엔탈리즘’의 완벽한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 ‘뮬란’의 승리는 이렇게 여러 갈래의 해석이 엇갈리는 지점에 놓여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애니메이션 ‘뮬란’의 가장 큰 공로는 세상 사람에게 중국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일이었다.

애니메이션 '뮬란'(1998) / 출처: 디즈니코리아

12년이 지난 월트디즈니는 더 영리해졌다. ‘알라딘’처럼, ‘뮬란’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돼 버렸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뮬란’을 일회용으로 폐기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잘만 하면 영화 한 편만으로 1조 원을 넘게 벌어들일 수 있는 중국 시장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중국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재가공해서 다시 중국의 주머니를 털어낼 수 있으니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러려면 몇 가지 조치가 필요했다. 실사영화 ‘뮬란’은 애니메이션 ‘뮬란’을 보고 난 중국인이 뒤늦게 깨달아버린 기묘한(uncanny) 감정, 그러니까 “이거 우리 이야긴데 미국이 가져가서 만들었네?”, “무슈나 크리키는 원작에 없는 데, 이렇게 우리 이야기를 맘대로 바꿔도 돼?”, 이런 식의 기묘한 감정을 다독여야만 했다. 그래야 고개를 갸우뚱하며 콘텐츠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경계에 선 중국 관객의 의구심을 일소하면서 완전히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뮬란’은 10여 년 전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서 개봉됐지만, 관객은 냉담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그 ‘뮬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어로 읽으면 ‘무란’이 되어야 하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뮬란’이라고 읽히고 발음되는 오차부터 문제였다.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중국의 이야기를 미국 스타일로 바꿔버렸다는 불만도 들끓었다.

실사영화 ‘뮬란’이 유역비를 캐스팅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유역비는 ‘뮬란’에 대한 중국인의 잠재된 분노를 억압하기 위해 동원됐다. 잠재된 분노가 현실로 나타나면 코로나19보다 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월트디즈니의 이미지가 ‘반중국적’으로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뮬란’을 둘러싸고 경제적 동기는 물론, 문화심리 기제까지 작동하는 중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들의 삭제도 이런 우려에서 비롯됐다. 뮬란을 돕는 귀여운 캐릭터였던 무슈나 크리키는 아예 사라졌다고 한다. 특히 무슈는 중국인이 생각하기에 민족을 상징하는 고귀한 동물인 용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던 대가를 치러야했다. 중국 시사회를 마친 뒤 현지 관객의 의견에 따라 이야기를 바꾸었다고 하니 ‘뮬란’이 중국으로 귀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뮬란을 돕는 장군 리샹도 다른 인물들로 대체됐다. 뮬란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연모의 감정을 갖는 장수라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뮬란의 정체가 드러나자 지휘관의 입장에서 처벌과 도움이라는 이중의 선택을 잘 해결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뮬란의 여성 주체성을 강조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월트디즈니는 이렇게 중국과 세계의 관객을 모두 고려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목란사’ 원문은 ‘뮬란’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딸이 돌아온다고 서로 도우며 성곽에 나오고, 여동생은 언니가 돌아온다고 집에서 붉은 화장을 고루고, 남동생은 누나가 돌아온다고 돼지와 양 잡을 칼 슥슥 갈고 있다.” 뮬란의 귀환은 축제다. ‘조국’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싸워 승리를 거둔 여성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지금, 유역비는 과연 이런 캐릭터로서 ‘조국’에서 환대 받을 수 있을까.

그런 까닭에 유역비는 ‘뮬란’이 되어 환대를 받으면서 ‘조국’으로 돌아와, 잔치를 벌이기 위해 노력한다. ‘보안법’ 문제로 격렬한 시위와 무력 진압이 주목받았던 홍콩 문제를 두고 ‘조국’의 관객에게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 논란을 자초한 데는 분명한 정치적 맥락이 숨어 있다. 크리스탈 리우라는 영어 이름으로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조국’의 관객에게 희석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뮬란’이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영화의 안팎을 둘러싸고 이렇게 복잡한 문화의 경제학과 정치학이 역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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