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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중국영화 ‘팔백’이 만드는 ‘애국 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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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중국영화 ‘팔백’이 만드는 ‘애국 인민’
  •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0.10.23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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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백’은 1937년 일어난 중일전쟁 시절 이야기다. 파죽지세로 남하한 일본군에 상하이마저 함락될 처지가 된다. 상하이를 남북으로 흐르는 황푸강의 지류인 쑤저우강은 최후의 방어선이 된다. 중국군 88사단 262여단 524단의 부단장 셰진위안은 420여 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쑤저우강 근처 사행창고를 사수한다. 사행창고는 상하이의 은행 네 곳이 공동으로 마련한 창고다. 실제 부대원은 420명이었지만, 사기를 북돋운다는 명분으로 ‘800명’이 함께 한다고 말한 탓에 전투에 참가한 이들이 ‘팔백장사’로 불려왔다. ‘팔백장사’는 나흘 밤낮의 항전 끝에 결국 영국 조계로 퇴각한다. 이들의 항전으로 인해 10만 병력이 무사히 철수했다.

일제에 맞서 항거한 마지막 부대라는 상징성과 드라마 같은 이야기 때문에 ‘팔백장사’는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재였다. 1975년 딩산시 감독은 이미 ‘팔백장사’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연출했다. 딩산시의 ‘팔백장사’는 대만 영화였다. ‘팔백장사’가 속한 사단이 당시 장개석이 이끌던 국민당에 편제된 부대였기 때문에, 대만은 대륙보다 먼저 오랫동안 이들을 기려 왔다. 중국을 침공한 일본에 맞서 끝까지 항거했다는 사실은 대륙에서도 충분히 눈여겨 볼 대목이었지만, 그들이 국민당 부대였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상하이에서 일본군을 막아낸 전투를 영화화 한 '팔백'의 한 장면  (출처/ 바이두)

그랬던 이야기를 중국 6세대 감독 관후가 다시 소환했다. ‘팔백’은 화려한 스펙터클을 내세우는 블록버스터라는 최근 중국 영화의 흐름을 따라간다. 영화는 중국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를 전면에 배치하는 캐스팅 전략을 구사하고 역사의 기록이 남겨준 대로 400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동원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사행창고는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는 아시아권에서 상업영화로는 최초로 IMAX 방식으로 촬영됐다. 중국 관객은 이런 노력에 감동한 걸까?

지난 8월 말 개봉한 영화 ‘팔백’이 한 달 넘게 중국 극장가를 장악했다. 박스오피스는 30억 위안(한화 약 5천 100억 원)을 넘기면서 역대 중국 영화 흥행 순위 10위에 올랐다. 코로나19 때문에 영화 시장이 적잖은 타격을 입은 상황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하지만 영화 ‘팔백’이 관객의 선택을 받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숨어 있다. ‘팔백’은 사실 작년 제22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상하이 국제영화제는 중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제일 간다고 자랑해 마지 않는 영화제다. 매년 6월 열리는 영화제에는 국제적 이목이 쏠리기도 한다. 그런 영화제가 ‘팔백’을 개막작으로 선정했으니 영화로서는 순조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 셈이었다. 영화제 상영을 마치고 영화관 개봉을 이어갈 희망이 가득했다.

사건은 영화제 개막 이틀 전에 벌어졌다. 영화 제작사가 돌연 SNS를 통해 개막 상영을 취소한다고 공지했다. “기술적인 이유”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없었다.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가 고작 이틀을 남겨두고 ‘기술적인 문제’로 상영을 취소한다는 건 심각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설령 어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혹평을 감내하면서 상영을 해야 관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중국 영화는 이런 식으로 영화제에 앞서 상영을 취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장이머우의 영화 ‘1초’는 작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취소됐고,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중국 칭하이 성에서 열린 시닝 퍼스트청년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으나 하루 전에 취소됐다. 모두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결국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은 ‘합리적 의심’으로 굳어지고 있다. ‘1초’는 중국 현대사의 민감한 이슈인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삼았고, ‘기생충’은 계층 차별 문제가 거슬렸을 수 있다. 중국은 자국 영화의 해외 영화제 상영이든, 외국영화의 자국 내 상영이든 불문하고 사전 심의를 받고 ‘공영증’(公映證)을 받아야만 영화관에 걸릴 수 있다. 사전 시나리오 심사와 촬영 후 기술 심사, 내용 심사를 모두 통과해야만 한다. 설령 ‘공영증’을 받고 상영을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사후 심사를 통해 바로 스크린을 내려야만 한다.

▲'항일전쟁' 당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 '팔백'의 한 장면 (출처/ 바이두)

작년 상하이 국제영화제에서 ‘팔백’이 상영 취소됐을 때는 국민당 군대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라고 추정됐다. 거기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일본을 방문하느냐 마느냐 하는 외교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굳이 ‘항일’을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올해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오랫동안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와 중미 간 ‘신냉전’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대결은 중국을 내우외환으로 몰아넣었다.

그만큼 민심도 요동쳤다. 코로나 시국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않는 시진핑 주석, 미국과의 갈등에서 ‘한방’을 먹이지 못하는 정국에 중국 ‘인민’ 사이에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할 출구가 필요했다. ‘팔백’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다시 소환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용사들의 희생을 통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워주기에는 제격이었다. ‘팔백’은 그렇게 애국주의의 분출구가 되어 8천만 중국 ‘인민’을 애국자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웹사이트에는 “정말 감동”이라는 관객평이 줄을 잇고 있다. 공산당과 정부를 향한 답답한 비판은 애국주의라는 출로를 찾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중국에서 영화는 오늘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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