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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중국공산당 100년, ‘문화사업’과 ‘문화산업’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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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컬처차이나] 중국공산당 100년, ‘문화사업’과 ‘문화산업’ 사이에서
  •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1.01.08 05: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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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은 어쩌다 위기에 직면했는가?

마윈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중국공산당의 ‘괘씸죄’에 걸려든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사라졌다. 실종설마저 돌고 있는 지경이다. 작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회의에서 당국의 금융정책을 비판한 뒤부터 마윈은 전방위적 압박에 시달려왔다. “정부가 혁신을 제약한다”라는 요지의 발언 때문이었다. 중국 당국은 마윈의 앤트그룹의 상장을 무기한 연기하는 방식으로 분풀이를 시작했다. ‘아프리카기업영웅’이라는 TV프로그램 심사위원에서도 제외됐다. 마윈의 사례는 올해 창립 100년을 맞는 중국공산당이 ‘문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준다.

1921년 7월 1일. 망해가는 중국을 살려낼 방법으로 마르크스주의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일군의 사람들이 상하이에 모여들었다. 모두 12명이었다. 중국의 각 지역 ‘공산당’을 자처하는 조직의 대표들이었다. 창사의 마오쩌둥과 허수헝, 우한의 둥비우와 천탄츄, 상하이의 리다와 리한쥔, 베이징의 류런징, 장궈타오, 지난의 왕진메이와 덩언밍, 광저우의 천궁보, 도쿄의 저우포하이가 그들이었다.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네덜란드인 마링과 소련인 니콜스키도 동석했다.

장소는 상하이 베이러루 수더리 3호 리한쥔의 집이었다. 그의 집은 프랑스 조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링은 중국공산당의 성립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큰 소리로 역설했다. 바깥 행인들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마링의 연설이 끝나자 낯선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와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누굴 찾으러 왔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돌아갔다. 마링이 나서 분위기가 수상하니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대표들이 자리를 뜬지 15분도 안 되어 조계 경찰이 들이닥쳤다.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휴회’하는 순간이었다. 리한쥔의 집은 오늘날 상하이 싱예루 76호라는 주소를 새로 받아 ‘중국공산당 창립대회’가 열린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들은 며칠간 각자의 숙소에 흩어져 있다가 더 안전한 장소를 찾아 회의를 속개했다. 새로 물색한 회의장은 저장성 자싱에 있는 호수 난후(南湖)의 유람선 안이었다. 7월 6일 상하이북역에서 기차에 오른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중국공산당 제1차 대표대회 선언문 초안이 작성되었다.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렸던 건물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렸던 건물(출처/위키백과)

그렇게 탄생한 중국 공산당이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진행됐던 창립대회는 먼 옛일이 됐다. 공산당은 이제 명실상부한 중국을 통치하는 최고 기구로 자리매김되었고, 9천만 명이 넘는 당원을 가진 거대한 조직으로 변모했다. 중국 당국이 국가적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두 개의 백 년’(공산당 창립 100주년과 사회주의 중국 수립 100주년) 중 첫 번째 ‘백 년’을 올해 기념하게 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최고 강령인 ‘장정’(章程)은 “중국공산당은 중국 노동자 계급의 선봉대이자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의 선봉대이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업의 지도를 핵심으로 중국의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하고 중국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며 중국의 가장 폭넓은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한다”고 선언한다. 더불어 “새로운 중국이 수립된 이후 사회주의 개조를 순조롭게 이루었고 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를 완료했으며, 사회주의 기본 제도를 확립했고 사회주의 경제와 정치, 문화를 발전케 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장정’의 전문에는 계속해서 ‘사회주의 문화사업’을 통해 ‘사회주의 선진문화’를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한다. 도대체 문화사업은 무엇이고 사회주의 문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모호하기 그지없는 표현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우수한 전통문화’와 ‘혁명문화’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런 개념들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중국공산당이 꿈꿔온 문화가 실제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런대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문화사업’이라는 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어의 ‘사업’은 우리말 ‘사업’과 한자는 똑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중국어 ‘사업’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이윤 추구 행위가 아니라, 공산당이 주도하는 일종의 공적인 프로젝트를 뜻한다. 그러니 ‘문화사업’이라는 말은 공산당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문화와 관련된 일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중국에서 문화는 공산당이라는 상부 조직이 하부 인민에게 시행하는 일련의 기획이 상의하달(Top-Down) 방식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다.

지난 100년 동안 중국의 문화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져왔다. ‘장정’에 ‘인민문화’나 ‘민간문화’ 같은 말이 전혀 쓰이지 않고 오로지 ‘사회주의 문화’만을 강조하는 까닭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문화는 ‘인민’이 하의상달(Bottom-Up)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중국공산당은 다양한 문화 형식을 통해 통치 이데올로기를 인민에게 학습하는 도구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개혁개방이 시행되면서 이와 같은 일원화된 사고에 문제가 생겼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문화 또한 상품이 될 수 있고, 시장경제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대두했다. 당시 ‘문화상품’, ‘문화시장’이란 말이 등장했는데, 모두 이런 배경을 조금이나마 수용한 용어였다.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는 더 이상 이런 용어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 때문에 결국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전면에 등장했다. 중국공산당은 2009년 ‘문화산업’을 진흥해야겠다며 ‘문화산업진흥계획’을 발표했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의한 대중문화의 침식을 비판하기 위해 고안해낸 용어다. 이들이 1947년 펴낸 『계몽의 변증법』이란 책에서 이 말을 처음 썼으니, ‘문화산업’은 채 한 세기도 되기 전에 부정의 단어에서 긍정의 단어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렇다고 ‘문화산업’이 중국공산당 ‘장정’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니다. 중국공산당에게 있어 문화와 관련된 정책은 ‘문화사업’이 가장 우선이고, 여력이 되면 ‘문화산업’도 고려할 수 있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문화산업’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서 ‘문화사업’이라는 선을 넘으려 하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 중국의 문화산업을 선두에서 이끌어온 마윈이 최근 전에 없는 공격에 직면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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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란 2021-01-08 16:57:12
얼마전 체포되었던 지오다노의 창업주 지미라이가 다시 떠오르네요. 중국 속에서도 문화와 자유에 대한 갈망의 인민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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