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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환의 세계여행] 불과 150년도 되지 않는 일본의 육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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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환의 세계여행] 불과 150년도 되지 않는 일본의 육식 문화
  • 권동환 여행작가
  • 승인 2021.01.18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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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지 않았던 일본인
-화양절충요리
-서구화에 대한 열망

고기와 밀가루를 섭취하지 않는다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렇게 살 바에는 딱히 오래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밀가루와 고기로 만든 돈카츠는 일본의 대표적인 육고기 요리지만 그들의 육식 문화는 불과 150년도 되지 않는다. 과거 일본이 고기를 구할 수 없는 환경이거나 선천적으로 일본인들이 고기를 섭취할 수 없는 체질이라서 육식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고기를 먹지 않은 이유는 불교의 영향이 아주 크다. 1871년 12월 17일 ‘메이지 천황기’의 기록 중 일부를 살펴보면 육식 금지는 원래 승려의 계율 중 하나였으나 중고 시대(675년) 궁중에서도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토의 이름 모를 불상(사진=권동환 여행작가)
▲교토의 불상(사진=권동환 여행작가)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40대 일본 왕 덴무가 살생 금지령을 내렸다. 금지령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천황이 실권을 잃고 사실상 국왕으로 군림하던 쇼군들도 살생 금지령을 내렸고 그런 이유에서 일본인들은 육식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쓰나요시라는 쇼군은 잡아먹는 것은 물론 늙었다고 버리는 행위에도 유배령을 내렸다. 곱게 모셔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통에 유기견이 늘어나 전국에 개 수용소까지 지어 돌보느라 재정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메이지유신의 발상지인 가고시마현에서 마주할 수 있는 동상(사진=권동환 여행작가)
▲메이지유신의 발상지인 가고시마현에서 마주할 수 있는 동상(사진=권동환 여행작가)

무려 13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유지된 육식 금지의 전통이 무너져내리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이다. 오랜 세월 동안 육식을 금지한 일본은 어른과 어린아이의 수준으로 큰 신체적 차이를 가진 서양인을 마주한 뒤 육식 금지령을 풀게 된 것이다.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문명인이 아니다’라는 풍문이 돌 정도였다. 그렇지만 서구형 신체를 장려하기 위해 유럽의 슈니첼(얇게 저민 고기를 기름 두른 팬에 구워 먹는 음식)이란 요리를 일반 서민들에게 선보였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조리시간이 길고 가격이 비싼 이유도 있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육식 금지령의 영향을 받아왔던 일본인들이 처음부터 고기 요리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문명 개화를 시작하며 육식을 권장했지만 큰 진전이 없자 또 다른 대안을 찾았다. 서양의 요리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하여 일본인에게 맞는 음식으로 창조했다. 이것을 화양절충 요리라고 한다. 

돈카츠(사진=권동환 여행작가)
▲돈카츠(사진=권동환 여행작가)

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덴푸라 기술을 응용하여 고기를 고기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눈속임. 그것은 바로 자신들만의 의식세계 속에서 식문화의 변화를 준 돈카츠였다. 화양절충 요리는 돈가스 이외에도 고기와 채소를 토마토 즙과 섞어 볶은 뒤 넓게 부친 계란에 감싸 먹는 프랑스의 ‘오믈렛’과 라이스의 합성으로 탄생한 오므라이스가 있다. 인도 음식인 카레에 고기와 채소를 볶아 밥 위에 얹어 먹는 카레라이스도 화양절충 요리이다. 화양절충 요리 탄생은 부국 강별과 문명 개화라는 두 가지의 목표 덕분에 만들어졌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의 육식 문화는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서구화에 대한 열망이 컸는지 대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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