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랑을 수치화하고 비교하여 평가하려고 한다. 10만큼의 애정을 주면, 10만큼의 애정을 되받으려고 하는 연인들의 고민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관계를 수치화하거나 비교할 수도 없다. 물론 개인의 감성적인 표현이나 비교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을 섣불리 비교해서는 안 된다.
“자기는 나 얼마만큼 사랑해?”
“아니야, 내가 더 사랑해!”
연인 간의 알콩달콩한 대화이지만, 이 대화가 때로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감정을 비교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대화는 관계를 뒤틀리게 만들거나 상대방이 서운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더 사랑했었어.”
“나만 너를 사랑했던 것 같아 억울해.”
“나만 감정 소모해 버렸나 봐.”
그래서 연애를 하기 전에 사랑의 감정을 저울질하여 비교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애 전, ‘썸 단계’를 거의 필수적이다시피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은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다. 이런 심리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지 말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계산적인 연애’를 ‘쿨한 연애’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득이 될 것 같지 않으면 빨리 관계를 손절해 버리면서 쿨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듯하다. 사랑의 감정을 저울질하면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은 쿨한 게 아니라 겁이 많다는 방증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그마한 불이익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속 좁은 생각인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보겠다는 열정을 다 해야 비로소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열린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사랑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이 우리를 계산적이고 효율적으로 키워서 그런 게 아니다. 맹목적으로 그분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오로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육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생에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