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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터뷰] 안산문화재단 대표 김미화, 설 곳 잃은 공연예술인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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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터뷰] 안산문화재단 대표 김미화, 설 곳 잃은 공연예술인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것"
  • 백석원
  • 승인 2021.04.2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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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코로나19 상황으로 큰 타격을 받고 침체되어 있는 문화예술계 활성화를 위해 컬처타임즈에서는 문화예술인 인터뷰를 릴레이로 진행하고 있다. 컬처타임즈의 릴레이 인터뷰 ‘컬터뷰’에 지난회 출연했던 국창 신영희의 지목으로 현재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김미화’대표이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90년대 후반 기존의 콩트 코미디가 사장되는 위기에 직면했을 당시 전유성, 백재현과 함께 개그 콘서트의 시작을 주도했다. 개그콘서트는 실험적 코미디를 무대에 올림과 동시에 신인 코미디언에게는 등용문의 기회이기도 했으나 개그콘서트 폐지로 방송에서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크게 위축되고 코미디언들의 활동 무대가 좁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과 무대가 크게 줄고 위축된 코미디 장르의 현실상에 대해 개그우먼이자 방송인 김미화의 생각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인터뷰 중인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김미화 ⓒ컬처타임즈

 

▶개그콘서트 폐지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의 희극인들

1999년 9월 4일에 시작된 개그콘서트(Gag Concert)는 시청자들에게 매주 개그를 통해 웃음을 주며 2020년 6월 26일까지 방영된 KBS 2TV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자 21년동안 지속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개그맨의 산실이자 한국 개그프로의 대명사였다. 초창기 멤버로 원로 개그맨인 전유성과 김미화, 백재현, 심현섭, 김준호, 김대희, 김영철, 박성호, 김지혜 등이 있었다. 한때는 방송 3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개그야와 웃찾사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으나 개콘은 지속적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KBS는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 변화,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을 이유로 휴식기를 선언했으나 사실상 폐지에 가까웠다. 개그콘서트가 없어진 것에 대해 원년 멤버로서 김미화씨는,

 "코미디 프로그램 하나가 20년 가까이 그렇게 이제 맥을 이어왔는데 그것이 없어지면서 온 우주를 잃은 거다! 물론 선배인 저로서도 '이 코미디 장르 자체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 이런 위기감 같은 것도 좀 생겼습니다."라고 말했다.

Q. 안녕하세요. 컬처타임즈 구독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오늘 매우 반갑게 오랜만에 이렇게 뵙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께 문화예술이 좀 이런 시대에도 빛날 수 있도록 말씀 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Q.'개그콘서트'폐지 이후 개그맨들의 활동 영역이 크게 줄어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설자리가 정말 없어졌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우리 후배들에게는 그러한 코미디 프로그램 하나가 20년 가까이 20년 넘게 그렇게 이제 맥을 이어왔는데, 그것이 없어지면서 온 우주를 잃은 거다! 물론 선배인 저로서도 '이 코미디 장르 자체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 이런 위기감 같은 게 좀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위기감으로 이제 다 누린 사람이니까, 하지만 또 위기감으로 끝나면 안 되고, '무언가 후배들을 위해서 함께 무언가 코미디라는 장르만큼은 확실하게 살아 있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그콘서트 폐지 이후 방송 활동 영역이 줄어든 코미디언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은 공연예술인으로서의 활동도 못하게 되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개그우먼 김미화는 이런 어려운 시기에 봉착한 후배들을 염려했다.

Q. 코로나19 상황에서 코미디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후배들은 아예 그냥 어떻게 보면 내동댕이쳐진 상황이어서 얼마 전에 걱정이 돼서 후배들 하고도 같이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습니다.

곧 불러 줄 것 같은 또는 뭐 프로그램이 없다가 2주 만에 한 번 뭐 "어디서 게스트로 나와라." 이렇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지도 못하고 뭐 정규직은 뭐 말할 수도 없고, 그런 것은 꿈도 못 꾸고 그래서 후배들이 뭐 하고 있니 물어보니까 배달 그다음에 운전 서비스 어 그러면 박스 포장 뭐 이런 걸 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미화 씨는 후배들이 코미디밖에 모르고 그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것만 위해서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 대중문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생계를 걱정해야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없게 된 면이 선배로서 너무 안타깝고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작아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김미화 ⓒ컬처타임즈

▶개그우먼으로의 김미화

김미화는 신경여상에 입학한 후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개그우먼의 꿈이 있었던 그녀는 지인을 통해 방송국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도 하며 꿈을 키웠고 열아홉의 나이에 1983년 KBS 개그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공채 2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Q. 개그우먼을 하게 된 계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사실은 꿈이 코미디언이었습니다. 사람이 꿈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거 참 행복한 사람이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아기 때부터 동네에서 제가 웃기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 가수 흉내 내고 이런 것을 동네 분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우리 동네 스타였습니다. 여섯 살, 일곱 살 이럴 때부터 옛날에 이미자 선생님 노래라든지 뭐 이런 노래를 어린 꼬마가 트로트를 정말 잘하니까 빠져들고 꺾기 그런 걸 동네 분들한테 앞에서 해서 동네 스타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한 분 두 분 그렇게 사랑을 받다 보니까 '내가 나중에 코미디언 웃기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그렇게 하면 더 웃길 수가 있겠네.'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갔는데, 학교 친구들이 제가 무슨 얘기만 하면 빵빵 터지고 배삼룡 선생님 웃기시는 것 보고 연습하고 서영춘 선생님 그런 분들 보고 흉내내고 그랬습니다. 친구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나는 이런 데 소질 있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꿨고 제가 열아홉 살에 그 꿈을 이뤘습니다.

1983년 데뷔 이후 KBS '젊음의 행진'과 '유머 일번지'까지 진출하며 점점 입지를 다져가고 활약하기 시작했다. 1988년 국악 판소리에서 모티브를 따와 국악인 신영희의 북소리에 맞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김한국과 콤비를 이뤄 연기한 쓰리랑 부부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Q. TV 코미디 프로그램 ‘쓰리랑부부’에서와 같이 융복합적으로 국악을 코미디프로그램에 접목시킬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김한국 씨하고 저하고 쓰리랑부부라는 부부 캐릭터를 만들면서 '어떤 모양으로 하면 가장 많은 분께 좀 새롭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80년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기를 못 폈을 때라고 생각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작은 여자가 남편을 좀 휘어잡으면서 또 못생긴 여자가 잘생긴 남편을 못살게 굴면서 그러면서 뭔가 재미있게 콩트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는 걸 되게 좋아합니다. 그래서 연극이든 책이든 뭐 하여튼 제가 보고 익힐 수 있는 것은 많이 보려고 노력합니다.

또 당시 신영희 선생님께서 놀부 마누라 역할 하시는 것이 '굉장히 재밌다. 신 선생님 너무 맛깔나게 하신다.'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저런 못된 역할 같은 것을 한번 해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쓰리랑부부 캐릭터  순악질여사는 길창덕 선생님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일자 눈썹에 순악질여사를 그렇게 하면서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80년대는 코미디라는 장르가 저질 시비에도 휘말렸었고,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기자는 기자, 코미디는 코미디, 국악이면 국악 딱딱 틀이 있었으며 '국악을 왜 거기 가서 해야 해.' 라고 생각하는 국악인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국악인 신영희 씨의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선택에 대해 격식을 깬 파격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우리 신영희 선생님이 아주 커다란 결심을 해주셨던 겁니다. 우리 국악을 코미디에 나가서 당시에 코미디가 그렇게 막 인기가 있었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국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희 코미디 발전과 국악이 조금 더 한 걸음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선생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겠다고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마음을 가져 주신 것에 대해 신영희 선생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끔 전화하셔서, "어이 미화 우리가 또 그런 거 하나 또 해보면 안 될까?", "뭐 좀 공연 좀 할 거 없을까?" 그러고 전화를 주십니다.

이어 요즘은 장르도 고집할 필요 없고, 규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깨는 것들에 대해 포용하는 융복합의 시대로 문화적으로  황금기를 맞아야 하는 시기임에도 코로나19 영향으로 문화가 위축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김미화 ⓒ컬처타임즈

▶워킹맘으로서의 김미화

Q. 이혼 후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신 적도 있고 워킹맘으로 계속 활동하며 자녀를 양육했는데 인생선배로서 조언은?

"그러니까 제가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이 안됩니다. 1호입니다 1호, 1호인가? 1호일 수 있습니다."라며 개그우먼다운 위트로 이혼에 대해 말했다. 이어 현재의 남편과 오래 살아서 재혼했다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늦복이 많은 것 같다며, 아이들도 옆에서 시집도 안 가고 있고 우리 아들도 장애가 있지만 굉장히 기쁘게 자기 좋아하는 드럼 연주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행복한 현재 생활을 말했다. 

하지만 한창 활동하던 시기 임신을 하게 된 지난 날을 떠올리며, 당시에는 방송 만드는 스텝들도 그랬고, 저도 그렇고 임신하고 아이들을 낳는 것 자체가 방송 활동을 하는데 민폐라고 생각하고 되게 미안해하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기뻐야 하는데, 방송 스케줄에 지장을 주니까 그래서 "아니 왜 김미화 씨는 맨날 아기만 갖는 거야." 막 이런 얘기도 들었고, "방송활동에 지장이잖아 이거, 내일 녹화해야 되는데 아기 낳고 그러면 조금 더 있어야 되잖아." 이런 핀잔도 받고 그랬던 시절이 이었다고 회상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예비맘과 워킹맘을 위해 김미화 씨는,

"너무 바빴기 때문에 깨우치지 못했다. 아이들이 원할 때 옆에 못 있어 줬던 것에 대해 지나간 세월이 너무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아쉬움과 후회 같은 것이 남는다. 또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꽉 안아 달라고 하거나 쓰다듬어 달라고 하며 요즘도 아이들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마음의 허한 상태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젊은 엄마 아빠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이긴 하지만 육아휴직을 통해 자녀들이 원하는 시기에 함께 있어주면 좋을 것 같다."라고 조언했다.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서의 김미화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김미화는 지난 12년간 용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정원에서 문화예술 공연을 열고 장터로 물건을 핸드메이드로 조금씩 만든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일들을 해오면서, '이런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재미가 있구나. 조그맣게 같이 어우러지면서 노는 것이 용인에서 잘 놀다가 이제 안산 거리극축제, 좀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내가 한번 해 보면 참 재미가 있겠다.'라는 끌림이 있었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떨어지면 창피할 것 같아 몰래 서류를 집어넣었는데, 다행히 안산문화재단에서 방송인 김미화가 대표이사로 일하는 것이 재밌을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던 것 같고, 그 점에 대해서 감사하다며 누구나 서류를 응시할 수 있으니 용기있게 도전해보는 것도 인생에서 재미있는 한 경험일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전했다.

Q. 안산문화재단에서 이번에 마당놀이를 기획하고 계시지 않나요?

이제 제가 여기에 그 임기가 2년인데 벌써 6개월이 흘렀습니다. 마당놀이를 기획해서 멋지게 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그것이 관계들하고 함께 호흡하면서 눈에서 눈을 마주하고 아주 가까운 데서 해야 되는 극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지금 시대에 좀 어렵겠다 고 판단해 방향을 지금 바꾸려고 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요즘 미디어 쪽으로 비대면도 있고 또 비대면 아니어도 미디어아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형식을 좀 바꿔서 해 볼까 직원들하고 머리 맞대고 매일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김미화는 마당놀이를 기획해 진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공연이 어렵게 되어 새로운 비대면 공연을 기획 중이었다.

▲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김미화 ⓒ컬처타임즈

Q. 앞으로 안산시의 문화는?

저는 안산 예술의 전당이 안산시민뿐만이 아니고 전국에 계신 분들이  모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소문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 오셔서 이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공연을 함께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며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공연도 많이 보여 드리고 싶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계신 곳으로 예술이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공연장 안에서 하는 공연뿐만 아니라 밖에서 하는 번개 버스킹 공연으로 시민이 모여있는 곳 어디선지 모르게 예술가들이 나타나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끝으로 "주변에 여러분을 돕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고 안산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돕기 위해서 보이지 않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라며, "10년 뒤에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10년 뒤에도 계속 (코로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을 때 문화는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는지? 우리 함께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의 모티브가 돼서 또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스스로 뭔가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충분히 그 문화는 빛난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조금만 견디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미화는 열아홉 살 개그우먼 활동을 시작으로 방송인 그리고 문화재단 기관장으로 문화 예술과 끊임없이 함께 동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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