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컬처타임즈

유틸메뉴

UPDATED. 2024-03-18 18:16 (월)

본문영역

[권동환의 세계여행] 네팔, 느림의 미학과 다름의 존중
상태바
[권동환의 세계여행] 네팔, 느림의 미학과 다름의 존중
  • 권동환 여행작가
  • 승인 2020.02.17 13:53
  • 댓글 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팔의 전통 식사법인 손가락을 빨아먹는 행동은 “당신의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라는 뜻이다.
'나마스떼'
▲히말라야산맥 중부에 위치한 ‘수확의 여신’이란 뜻을 가진 안나푸르나는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해발 8000m가 넘는 8개의 히말라야 산봉우리는 인간의 발길이 허락되지 않은 신의 영역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팔을 떠올리면 히말라야 산맥을 연상한다. 눈 덮인 고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의 도전이 네팔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히말라야산맥 이외에도 네팔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 많다. ‘신에게 보호받는 땅’이라는 명성이 걸맞게 귀중한 세계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감내하는 모험만큼 가슴 뜨거운 여정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네팔인들의 마음가짐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그것은 떠나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카트만두의 시내 (사진 =권동환 여행작가)

네팔로 향하는 길은 유일한 국제공항이 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꼭 거쳐야 한다. 사실, 네팔의 관문도시인 이곳의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간 카드만두의 풍경은 번잡한 인파와 포장도로 위의 검은 매연, 누런 먼지로 가득한 골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퍼져가는 누런 먼지는 인후통을 줬고 통증만큼 실망감도 컸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네팔에 대한 나의 감정은 조금씩 변해갔다. 군잔(Gunjan)이라는 친구가 생긴 뒤부터였다. 작은 키와 큰 눈을 가진 부드러운 인상의 그는 묵고 있던 숙소의 직원이었다. 그에게 건넨 첫 마디는 “WI FI 도대체 언제 사용할 수 있어?”였다. 잦은 정전 때문에 끊기는 인터넷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전혀 몰랐다. 며칠 뒤 그가 자신의 집으로 아침식사를 초대할 만큼 우리가 가까워질 거란 사실을.

▲군잔의 가족사진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비슷한 또래의 나이였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은 겁이 나고 두려웠다. 혹시라도 모를 사건사고가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함이 진정된 건 잠에서 깬 그의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였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향 좋은 밥냄새가 집 안에 진동했고 잠시 뒤, 동그란 쟁반에 카레와 밥 그리고 수프가 올려져 나왔다. 네팔의 전통 음식인 달밧이었다. 정성 담긴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들의 방식으로 식사를 했다. 쌀밥과 반찬을 섞은 뒤 손으로 움켜쥐어 먹어야 하는 네팔은 수저를 쓰는 한국과 전혀 다른 전통 식사법이다. 특히, 손가락을 빨아먹는 행동은 “당신의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라면 수프가 묻은 손가락을 빨아먹는 것처럼 몇 번이고 빨고 또 빨았다. 

식사를 하던 중 한결같이 밝은 그의 표정에 질문을 던졌다.

“군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너는 미소를 잃지 않고 대화를 했어. 나쁜 이야기든 좋은 이야기든. 비결이 뭐야?”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진단하고 도움을 얻잖아. 과거는 마음 깊숙이 추억이라는 보물이라고 생각해. 아쉬운 지난날에 의존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지.”

비결 따위는 없었다. 그저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그는 욕심과 거짓이 없었다. 자신의 철학을 낯선 이방인에게 털어놓는 그에게  더 이상 경계는 무의미했다. 친절을 베풀고 우정을 나누는 그의 선심 덕분에 네팔에서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져갔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스와얌부나트 사원의 '지혜의 눈'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군잔과의 인연을 통해 네팔에 대한 애정이 싹이 틀 무렵, 부처님의 탄생지가 네팔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태껏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었지만 활동 반경이 주로 인도였던 탓에 잘못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사실, 네팔의 종교문화는 아주 특이하다. 네팔에서 히말라야산맥이 유형의 상징이라면 종교는 무형의 상징일 정도이다. 힌두교와 불교의 독특한 조합과 3억 3천만 개의 신이 존재하는 ‘신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시내 안에 있는 스와얌부나트로 일명 ‘원숭이 사원’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써 약 2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해진다.

여행자들의 물건을 노리는 원숭이들을 피해 30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는 묘한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시선을 끌어당긴 정체는 ‘지혜의 눈’이다. 두 개의 눈 아래 물음표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네팔의 숫자 1을 형상화한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를 알고 난 뒤의 여행은 더욱 성장하기 마련이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으로 향하는 계단길에서 마주하는 원숭이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번뇌의 시간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여행자에게 ‘지혜의 눈’은 또 다른 여행길을 재촉했고 과거 엄청난 번영을 누렸던 네팔의 고대 도시 ‘박타푸르’로 향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수백 년 전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겨진 이곳은 자그마한 입구를 경계로 현대와 중세의 네팔을 오고 갈 수 있다. 몇 걸음만 걸었을 뿐인데도 좁고 복잡한 골목을 이루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충분하다.

그런 풍경 속에서 땀방울이 녹아든 공예품을 손수 제작하는 모습과 공사를 할 때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업을 하는 네팔인들의 일상이 아주 인상 깊다. 빠르게 변해가는 각박한 현대사회와 달리 오랜 세월에 낡고 닳은 전통을 고수하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고 모든 것에 대하여 상당히 천천히 진행되는 느긋한 생활을 둘러보다 보면 인사를 건네는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기 쉽다.

▲
▲대나무 사다리를 이용하여 작업을 하고 있는 공사장 인부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나마스떼’ 

꾸밈없는 미소의 인사는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비로운 의미의 인사는 그들의 종교와 연관이 깊다.  세계 유일의 힌두 왕국이자 석가모니의 탄생지로써 2000년의 불교문화를 자랑하는 네팔에서는 세상 모든 것에 신성을 부여한다. 특히, 타 종교의 배척이 흔한 세상이기에 힌두교와 불교의 융합을 볼 수 있는 ‘박타푸르’가 그저 특이하기만 하다. 힌두 사원에서 불교의 흔적을, 불교사원에서 힌두의 자취를 혹은 두 종교인이 행사를 함께 거행하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박타푸르의 오후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이색적인 장면들은 바라보다 보면 네팔이 신과 연관이 깊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신의 영역’ ‘신들의 나라’ ‘신에게 보호받는 땅’ 온통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위태로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조화롭지 못한 여러 요소들마저 만물을 소중히 여기는 네팔인들의 태도 덕분인 것 같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고 언제 어디서든 신을 만나는 마음가짐이 대립보다는 조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들의 삶 속에서 배울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리적, 공간적, 시간적 여유를 통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과 다름의 존중을 통해 ‘새롭게 빨리빨리’가 항상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네팔은 머무를수록 매력적인 땅이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 독자분들의 후원으로 더욱 좋은 기사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미미공주 2020-03-08 20:23:37
유익합니다 앞으로도 많은글 부탁드려요

TW 2020-02-18 19:57:18
젊은작가의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좋은글 감사요!

김리라 2020-02-18 18:49:10
이은경작가카페에서 보고 왔는데 업데이트 되실 때마다 새 기사 소식에 오늘처럼 올려주세요! 이은경작가와 준비중이신 그래한달도 기대하겠습니다^^

이창훈 2020-02-17 17:53:06
사진 너무 잘찍으셨네요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박연구원 2020-02-17 17:44:52
나는 이 작가를 사랑한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이다. 신선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하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