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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특집 인터뷰] 지적 장애 기타리스트 김지희, '기타로 전하는 감사함과 사랑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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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특집 인터뷰] 지적 장애 기타리스트 김지희, '기타로 전하는 감사함과 사랑의 마음'
  • 고수영, 백석원 기자
  • 승인 2020.05.08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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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이의 재능을 찾고 그 분야를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기타리스트 김지희와 어머니 이순도씨 (사진 =백석원 기자)

최근 지적장애를 갖은 중학생이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지적장애 여성이 성 착취를 당한 사건도 다수의 언론매체들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지적장애 자녀를 둔 보호자들은 한시도 자녀에게서 마음을 놓기 어려운 세상이다. 특히 지적장애인 딸을 둔 보호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안전도 안전이지만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워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내려놓기 힘들다.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아픔과 걱정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극복해나가야 하는 우리 사회의 개선점들을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김지희씨는 13살에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기타리스트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지희씨가 무대에서 행복하게 연주하기까지는 곁에서 늘 그녀의 대변인이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주며 그림자처럼 함께한 어머니 이순도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타리스트 김지희씨도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자신의 음악으로 어머니께 전했다. 2019년 7월에 발표한 첫 싱글 데뷔곡 '엄마의 뒷모습'이 그것이다. 지희씨의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김지희씨의 기타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게 해준 것은 어머니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한 분 아버지이다. 지희씨는 지적장애로 어휘력, 수학연산 능력 등 인지능력과 사회성이 부족한데 무엇보다도 악보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음악 공부는 포기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쭉 9년 동안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지희 씨가 미술학원을 다니는데도 계속 사회성은 없고 생활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코드 몇 개만 배워서 아버지와 기타치고 놀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지희씨에게 권해서 뒤늦게 기타를 시작하게 됐다.

김지희씨와의 인터뷰를 생각했지만 지희씨가 의사전달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적 장애인이기 때문에 기타리스트 김지희씨와의 인터뷰는 어머니 이순도씨와 이루어졌다. 인터뷰 내내 지희씨는 인터뷰 내용을 들으며 중간중간 이제 나이가 많아져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는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물어보면 답해주지만 지희씨도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서로 웃으며 지나간다. 지희씨가 전국 곳곳에 있는 학교에서 스토리텔링 콘서트를 하거나 강연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늘 모녀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지희씨 어머니 이순도씨에게 질문했다.

Q1. 지적 장애를 갖은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지희씨의 성장 과정과 기타를 하게된 계기 그리고 공부 방법에 대해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는 엄마로서 되게 막막했습니다. 아이가 학업을 마치고 할 수 있는 일은 단순 작업밖에 없는거예요. 그러면 얘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늘 고민했습니다. 너는 평생 그림이 취미이니까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적장애가 있어서 그림 전공도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성이 너무 부족해서 100미터 이상을 혼자 못 가기 때문에 학교앞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개별학습을 1학년 때 다녀보니까 장애도움실에 있으면서 아이가 그냥 주눅 들어서 있고 해서 아예 학교에 말하지 않고 일반으로 2학년 때 전학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5월에 전학 간 학교에서 불러서 가보니 수학시험지를 보여주셨는데 점수가 0점이었습니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사실은 1학년 때 개별학습실에 있었는데 공부는 안되지만 사회성이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싶어서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언어장애연구소를 3년 정도 보내는 동안 '어제와 오늘'을 구분 못했습니다. 집에서 저와 고치려고 노력했는데 지희가 말이 잘 안되니까 일반 친구들 앞에서 말을 전혀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돼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하는 날까지 그랬습니다. 일반 학급과 장애도움실에서 반씩 보내는 생활에서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아이가 날개를 펴지 못했습니다.

Q2. 지적장애인 자녀를 위해 교육제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겠습니까?

기타를 하기 시작하면서 키워보니 어렸을 때부터 공부가 안되는 아이라면 공부쪽보다는 취미나 특기를 개발해 주는 것이 초등학교부터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도움실에 있다가 일반학급에서 배우는 수업이 국영수를 배우라고 하셨는데 하나도 따라가지 못하니까 수업시간에 졸거나 캐릭터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기타를 배우면서 성장한 지희를 보면 장애아이가 뭔가 재능이 있다면 아예 그쪽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 수업은 별로 없고 그림 그리기, 만들기나 종이접기 같은 수업이었습니다. 단순히 아이들과 다같이 할 수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나가면 선생님들께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드립니다.

Q3. 음악을 한다면 악보를 보아야 할텐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그런데 지희가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인터넷을 열고 좋아하는 팝송을 들으면서 리코더를 불고 오카리나를 불어보고 했습니다. 악보를 못 보니까 음악 가르치기를 꺼렸는데 기타를 만나면서 코드가 있구나 코드 몇 개를 가르치다 보니 이 아이가 기타에 너무 재능이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소리도 예쁘고 내가 하면 안 되는데 아이가 해내고 하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기타에 몰입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악보를 못 보는데 사람들은 타브악보는 악보가 아니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악보라고 생각합니다. 악보가 아니라고 하시면 너무 속이 상합니다. 지적장애를 갖은 저희 아이에게는 이 악보가 있어 꿈을 키울 수 있고 기타를 할 수 있습니다. 기타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고 단순한 타브 악보라도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으면 좋습니다.

저는 장애예술인이 많고 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을 지희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몰랐습니다. 2012년 10월 29일 TJB대전방송주관 '전국장애 학생음악콩쿨'을 3학년 장애도움실 박주인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참가해 고등부 관현악 부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이후에 많은 일들이 시작됐습니다. 지희의 무대를 만들어 학창시절을 기념하고 싶은 저의 간절함이 이루어지고 방송 출연의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박주인 선생님께서는 "다른 엄마는 아이의 장애가 밝혀지면 심지어 이사까지 가고 노출을 안 시키려고 쉬쉬하는데 어머니는 무조건 자랑을 한다고 특이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랑스럽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기타를 잘 치는 것이 저에게는 최고이고 자랑입니다.

Q4. 제가 보기에는 사회성이 없어 보이지 않고 밝아 보이는데?

"기타가 의사였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제 뒤에 숨어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제가 지희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 이겨내고 있는 것이 놀라운데, 기타 때문이었습니다. 기타 중에도 쇠줄, 2012년 5월부터 핑거스타일 연주를 배웠는데 하루 종일 만지고 누르면서 두 손으로 계속하니까 쇠줄을 누르면서 손끝이 자극되었습니다. 저는 손가락이 아파서 못하는데 지희는 이겨내면서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기타 연주를 함으로써 인지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Q5. 기타리스트 김지희씨가 장애예술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기까지는 어떤 과정들이 있으셨습니까?

지희는 인지성, 사회성이 전혀 안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기타로 이렇게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한해 한해 무대 위에서 연주를 거듭할수록 푹숙였던 고개도 들고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뮤직캠프에서 멘토로 만난 이병우 선생님 추천으로 2013년 2월 5일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 성화 소화 타임에 전 세계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히 기타 독주를 연주했고, 여러 방송과 매체에 소개되어 장애인 친구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하고, 이음센터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홍보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또 SNS를 통해 알게 된 현진식 감독님과 뮤직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를 촬영하는 기적같은 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원대 철학과 교수님이 인문학 테마 콘서트를 해달라고 요청하셔서 스토리텔링 콘서트를 하게 됐다고 말하자 누군지도 몰랐던 한 분이 "PPT 있으십니까?" 그러셨는데 전 "PPT가 뭐예요?"하고 되묻자 "그러면 내가 PPT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연가를 내셔서 지희를 도와주시러 목원대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회적가치혁신성장센터 김현종 부장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PPT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만들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교육청 주관 스토리텔링 콘서트 '도전은 희망이다.'를 할 때마다 PPT를 계속 보완해서 사용하고 있어 감사한 분입니다.

Q6. 어머니로서 앞으로 지희씨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놀랍고 감사한 것은 지희가 무대에 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뛰어넘어 희망을 주고 또 그 무대에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행복하게 예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타라는 보물을 만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대는커녕 자기 교실도 고등학교 3학년까지 머뭇거리며 들어가던 아이가 비장애인 친구들과 말 한마디 못해서 벙어리인 줄 알 정도로 말도 못 하던 아이가 자신감 있게 웃으며 연주합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공연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입니다. 제일 바라는 무대가 학교입니다. 학교를 평생 다니면서 행복하게 연주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지금도 자녀의 안전과 교육에 마음 졸이고 생각에 잠겨 있을 것이다. 지희씨의 어머니도 학교 바로 앞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일반 친구들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우울해 있는 지희씨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며 지희씨를 키웠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열심히 해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걱정은 조금 내려놓고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모녀가 행복한 연주여행을 다니는 모습에서 장애인들에게도 예술 활동이 삶에 좋은 영향을 주며, 예술 분야 외에도 장애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문화를 향유해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보편적 권리를 누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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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김지희와 어머니 이순도씨 (사진 =백석원 기자)

 

기타리스트 김지희 연주 [영상촬영=백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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