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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12번째 이야기) 아이중심교육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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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즈 윤온유칼럼] 12번째 이야기) 아이중심교육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교육이 아니다.
  • 윤온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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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는데 왜 고집이 더 늘어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것이 아이중심교육이 아니다. <출처 / 픽사베이>

아이 중심 교육을 추구하는 원이라 해서, 멀리서 입소 상담을 하러 오신 부모님이 질문하셨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아이 중심 교육 아니냐며,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점점 고집이 심해지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더 요구하며 떼를 쓰는 정도가 심해졌다고 걱정한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기 때문에 고집이 늘지 않았을까요?"라고 물었다.

과연,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 '아이 중심 교육'의 본질일까?

아이 중심 교육, 놀이 중심 교육. 2019 개정 교육과정이 2020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2020 누리과정 교육 개정을 살펴보면,
누리과정은 3~5세 유아를 위한 국가 수준의 공통 교육과정으로서,
가.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지역, 기관 및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나. 유아 중심과 놀이 중심을 추구한다.
다. 유아의 전인적 발달과 행복을 추구한다.
라. 유아의 자율성과 창의성 신장을 추구한다.
마. 유아, 교사, 원장(감), 학부모 및 지역사회가 함께 실현해가는 것을 추구한다.

는 내용을 담고 각 유아교육 기관에 적용하여 교육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많은 유아교육 기관의 원장님, 선생님, 부모님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관련 정책에 관해 공부하며 준비하는데, 막상 관련 교육을 받고 온 현장의 실무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지금까지 교육은 아이 중심이 아니었나?'라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 중심 교육과 놀이 중심 교육이라는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 교육은 어떤 교육이었다는 말이며, 여기에 대한 개념은 어떤 것이 기준이고, 무엇을 준비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구체화되지 않은 데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금까지 교육의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단어들로 축약될 수 있다.
'주입식 교육, 시험식 교육, 어른 주도형 교육, 암기식 교육' 등 대부분이 폐쇄적이고 딱딱한 내용의 단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교육들이 아이가 주도하는 아이 중심 교육과 놀이로 풀어나가는 놀이 중심 교육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이 중심 교육' 과 '놀이 중심 교육' 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놀이 중심 교육을 말하기 이전에, 아이 중심 교육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대부분이 아이 중심 교육은 '아이를 위한 교육'이라 말하면서도 실제 그 교육의 현장을 자세히 보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교육'이라고 이해하며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려는 생각과 행동을 보여준다.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이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출처 / 픽사베이>

또한 '아이를 위한 교육'의 본질이 아이 스스로가 인생을 살아가는 발판을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하는 교육이 아닌, '아이가 성공의 자리에 서게 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위한다는 표현 아래, 어른이 원하고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이 중심 교육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시킬 수 있을까?

 

노벨상의 1/3을 가지고 간 세계적으로 가장 지능이 높은 민족인 유대인의 교육법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히 최고 수준의 교육이라 할 만큼 민족적으로 교육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은 교육법 개정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역사적으로 변질하지 않는 교육법을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2000년 동안을 각 나라에 흩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 다시 모였을 때 서로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성경과 토라, 탈무드를 통해 통일성 있는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로스 실로가 지은 '유대인은 자녀를 이렇게 키운다'에서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아이 위주로 생각한다. 어린이들을 학원에 보내지도 않으며, 시험도 없고, 공부하라고 엄마가
옆에서 감시하지도 않는다."라며 유대인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 지혜와 애정, 의미를 심어주는 데 집중하며, 인성과 사람과의 관계와 절대적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가진 신념을 심어주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자립적으로 인생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과정과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 전달하는 내용 중 "남보다 뛰어나기보다 남과 다르게 돼라, 싫으면 하지 마라, 그러나 하려거든 최선을 다하라, 아버지는 자녀의 정신적 기둥이 된다. 형제의 두뇌 비교보다는 개성의 비교를 살린다. 어떤 장난감도 교육용 장난감이 된다. 인생에서 최대의 지혜는 친절이다.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친다, 자녀에 대한 최고의 벌은 부모의 침묵이다." 등 실제 우리의 교육의 관점과는 다른 색깔의 내용으로 아이 교육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자신이 받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있을 만큼, 교육적 가치와 전달, 지속, 일관의 자세를 보이는 유대인들의 업적을 보면 'MicroSoft, Google, 스타벅스, 파라마운트, 델, 인텔 등의 미국의 100대 글로벌 기업의 40개 기업이 유대인 자본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학과 경제 분야에서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40%, 세계 노벨상 전체로 봤을 때 27%가 유대인, 글로벌 나라인 미국 전체 변호사 중 15%가 유대인이며, 미국에서 등록된 의사 15%, 일 정도로 그 영향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

▲유대인 자본으로 이루어진 회사들<출처 / 구글검색 , '유대인회사' ,https://pbs.twimg.com/media/CtYzNN2VMAEOcJQ.jpg:large>

 

그렇다면 인구수가 많아서일까? 인구수는 전 세계 인구의 0.2%밖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1명의 유대인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나라 하나를 움직일 만큼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영향력의 시작이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아이 중심 교육과 변질하지 않는 민족적 교육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교육을 미루어볼 때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상태에 따라 행동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의 전체 인생의 미래를 두고, 아이가 내가 없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이 능동적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교육의 시작이 바로 "아이 중심 교육"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에 자신의 의무를 지킬 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책임질 수 있도록 사고의 구조를 확장하며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하며 논리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목표 지점을 두고 찾아가도록 하는 교육, 이것이 아이 중심 교육이다.

안 되는 것을 알면서 아이를 위해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라는 것은, 자신이 만든 행동에 대한 변명일 뿐, 그것을 '아이 중심'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 중심 교육이 되어야, 아이가 놀이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게 하는 놀이 중심 교육이 가능해진다.
이미 아이 중심 교육의 본질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이가 놀이를 이끌어가는 과정을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 중심으로, 아이가 가야 하는 방향에 함께 성장해가면서 배워가는 교육이 우리에게 체질이 되어야 아이가 하는 놀이가 온전히 이해되며, 아이가 하는 놀이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아닌, 아이가 찾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으로 진행되도록 도울 수 있다.

▲부모의 인성교육이 아이를 위한 아이중심교육의 시작이된다<출처 / 픽사베이>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아이였을 때를 생각해보는 것부터가 아이 중심 교육의 시작이 된다.
우리는 공부로, 성적표로 나를 야단치는 부모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내가 충분히 놀아야 할 시간에 시멘트로 가득한 네모난 상자 박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것에 급급해 그 안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부모를 이기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사실은 지금도 생각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시간은 우리에게 더욱 아까운 시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인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고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좋은 것을 분별해가는 이야기를 나눌 그 시간을, 또다시 쳇바퀴처럼 시멘트로 가득한 네모난 상자에 우리 아이들을 넣고 있다.
그리고, 보상해주다시피, 성적의 업 다운에 따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어 어쩌면 이미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어 미안했던 '죄책감'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교육이 되고,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 되며, 부모님의 따뜻한 이야기와 질문과 피드백이 중요한 순간에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시작하면 된다.
갑자기 학원을 끊고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에게 유대인 교육을 '따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적 구조와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설픈 모방은 나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게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우면 지속할 수 없다.
쉽게 접근해야 하고, 일관적이고 지속적이며, 가족이 통일된 교육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이 부분은 깊이 있게 현실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

이번에는 아이 중심 교육에 대한 본질적 의미에 대해 전달했다면, 다음 칼럼에서는 아이 중심 교육을 여러 현실적인 실제 상황에 대입해서 어떻게 쉽게 적용하고
지속해서 진행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래서 우리 아이의 인생이 우리의 기준, 또는 다른 사람의 기준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함께 성장해가는 발판을 마련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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