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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국가무형문화재 장도장 박종군 장인, 무형문화재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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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국가무형문화재 장도장 박종군 장인, 무형문화재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 백석원 기자
  • 승인 2020.05.29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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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에는 '가치있는 삶'을 위한 철학이 담겨있다.

[편집자주] 본지<컬처타임즈>는 우리나라의 문화 중에 특히 역사적으로 되짚어보고 현재의 우리 사회에 투영해 보아야 할 전통문화와 관련된 문화재에 대해 '전통문화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기획 취재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지정한 국가무형문화재 중에서 문화재청은 전승취약종목으로(‘20.1월 현재 35종목) 추가지원대상을 선정했다. 예능분야는 서도소리, 가곡, 가사, 줄타기, 발탈 (5종목) 이며, 기술분야는 갓일, 한산모시짜기, 매듭장, 낙죽장, 곡성의돌실나이, 조각장, 궁시장, 채상장, 장도장, 백동연죽장, 바디장, 침선장, 궁중채화, 선자장 등(30종목)이다. 장도장은 기능분야의 취약 종목으로 국민들의 관심과 보존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현재 장도장 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몇 안 되는 장인 중에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보유자로 지정된 박종군 장인을 만나 장도장에 대한 일을 채록하고 전통문화 발전 방향을 생각해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 장인의 장도 만드는 모습 (출처/광양장도박물관)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 장인은 2011년 2월에 장도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박종군 장인의 아버지(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60호 故 박용기 장인)가 장도를 계속 만드셨기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장도와 함께 해왔으며 아내 정윤숙과 두 명의 아들 박남중, 박건영 가족 모두가 3대째 이어 장도를 만드는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박종군 장인은 공예분야의 장인인 동시에 전통 공예를 전승·육성하는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에서는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나가고 무형문화유산의 부흥을 위한 여러 논의를 공론화하며 기능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안을 재정립해 나가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장인으로서 또한 협회의 이사장으로서 평생을 일해 오며 많은 장인들과 함께 고민해 온 전통문화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많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인터뷰였다.

Q1. 아버지 대에서부터 아드님까지 3대에 걸쳐 계속 장도를 가업으로 이어가고 계신데 박종군 장인과 아드님이 장도장 일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 두 분이 장도 사업을 하실 때 아름다운 모습만 본 것이 아니라 너무 슬픈 모습을 보았습니다. 힘드신 것을 보면서 아들이 하나니까 빨리 커서 아버지께 힘이 되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효도의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3대째 배우고 있는 아들들은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배울 때보다 좋은 환경을 보면서 시작하게 된 자발적인 요인이 큽니다.

Q2. 아버지께서 광양에 장도박물관을 건립하셨는데 건립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아버지께서 장도를 수십 년 동안 만들어 오시면서 항상 생각하신 것이 장도는 좋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알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보통 칼이라고 하면 쓰임새가 전쟁용 무기라든가 아니면 실생활에 쓰이는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 장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정신이 담겨 있어 인문학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장도 안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치있는 삶'을 위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선인들은 과거에 자식이 성인이 되면 또 딸이 시집을 가게 되면 장도를 채워주거나 혼수품에 넣어줍니다. 아들일 경우에는 충, 효, 의, 예를 가르치고 장도를 볼 때마다 그 정신을 가지면서 살도록 아버지가 아들의 허리춤에 채워줬습니다. 또한 딸이 시집을 갈 때는 어머니가 딸의 혼수품에 장도를 넣어주면서 일부종사의 개념, 지조의 정신을 가르쳤습니다. 살아가면서 인간은 나쁜 마음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 장도를 보면서 '나쁜 마음을 도려내라'는 좋은 정신이 담겨있는 칼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 장인은 현재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 장인은 현재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으로 많은 장인들과 함께 고민해 온 전통문화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견해를 전하기 위해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사진=이현표 사진기자)

Q3. 조선시대에는 실생활에서도 장도가 많이 사용됐습니까?

- 네. 장도는 한 뼘 남짓한 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과일도 깎아먹고, 종이도 자르고, 나무도 베고, 피리도 만들고, 향도 깎고 심지어 머리도 잘랐습니다.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많았던 칼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예품의 성격이 있어서 한국 장도는 유명했습니다. 거의 1100년에 걸쳐 중국에 공물로 바쳤는데, 한국 장도는 고려시대 때부터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것입니다. 중국의 칼보다도 훨씬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있어 자랑할만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Q4. 한국 장도는 실제로 보아도 너무 아름다워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본 칼을 보면 섬뜩하고 무섭다는 위압감이 듭니다. 하지만 한국 장도는 무섭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 예쁘다." 그런 느낌으로 차이가 나옵니다.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칼 문화로 볼 때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 우리나라는 선비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종군 장인의 아버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60호 故 박용기 장인이 만든 아름다운 한국 장도 (출처/광양장도박물관)

Q5. 아버지께서 광양장도박물관 건립에 전 재산을 기부하셨는데 기부 금액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아버지께서 장도의 좋은 정신을 국민에게 알려야겠는데, 작업장이나 집에서는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숙원 사업으로 수십 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그때 당시 수억 대의 집과 땅, 전 재산을 기부체납하고 아버지가 평생 만들어 놓으신 작품들과 소장품도 모두 기증하고 국가 예산과 도 예산, 광양시 예산을 모두 모아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장인이 평생 애지중지했던 작품을 국민에게 준다는 것은 좋은 정신이고 자기희생을 통해 이루어낸 업적입니다. 지금은 박물관이 공공의, 전통의 소중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Q6. 장도장을 해오시면서 기억에 남으시는 일이 있습니까?

-삶 자체...... 가 기억에 남습니다. 장인의 일이 즐거운 일보다는 항상 고뇌 속에서 살고 멈춤이 없어 잠을 하루도 제대로 못 자봤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박물관을 개관하고 가족과 여행 한 번을 못 가봤습니다. '참 이 길이 이렇게 힘든 길이구나.' 부인과 자식에게 나쁜 남편, 아버지가 되고 보통 가족생활이 아닙니다. 그런데 또 그것을 이해해 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장인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조이고, 특히나 힘든 일을 할 때는 가족이 힘입니다. 같이 일을 해야 하다보니 아내도  이수자가 되고 한배를 타고 아들들까지 가족 4명이 모두 다 장도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 장인은 현재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으로 많은 장인들과 함께 고민해 온 전통문화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견해를 전하기 위해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사진=이현표 사진기자)

Q7.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을 맡고 계시기 때문에 무형문화재 분들의 생활여건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실 텐데, 무형문화재 분들께서 전승활동을 하시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십니까?

-우선 장도가 활성화 종목도 아니고, 취약 종목이다 보니 제가 느끼고 있는 부분을 우리 장인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가지고,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1962년 제정된 문화재 보호법이 있습니다. 제도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에 발맞춰 가야 하는데 변화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재에는 크게 두 가지 장르가 있습니다.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가 있는데, 유형문화재는 우리나라 각지에 수만 점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유형문화재는 보호 조치가 잘 되어 있습니다. 태풍이 불어서 기왓장 하나만 날아가도 바로 수리합니다. 숭례문도 바로 수리했습니다. 그렇듯이 유형문화재에 대해서는 전 국민과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재청의 예산이 95%가 유형 예산입니다. 5%는 무형 예산입니다. 그 시대 수백 년, 수천 년 남게 될 유형 유산들은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무형문화재에는 예산이 너무 없습니다. 지금 있는 사람들을 잘 보호하고 격려하고 지원해 주어야 앞으로 백 년, 이백 년, 천년 후에 이 시대 문화유산이 또 유형으로 남을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안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Q8.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의 예산편성이 많은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화재 조직의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청의 유형 조직이 97%나 됩니다. 3%가 무형 조직입니다. 조직이 너무 작다 보니 예산을 가져오기도 더 어렵습니다. 근본적인 것부터 변화가 필요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 장인(사진=이현표 사진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이자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종군 장인은 평생을 장도를 만들며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해왔고 지금도 현장에서 무형문화재 기능분야의 보유자들과 함께 전통문화의 진흥과 발전 그리고 안정을 위해 고민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 나가고 있다. 유형문화재와 비교했을 때 무형문화재에 대한 예산의 적은 편성과 문화재청 내의 조직의 규모 차이 외에 개선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한편, 새롭게 마련된 좋은 제도에 대해서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분야 보유자분들이 생각하는 개선이 필요한 제도들에 대해 다음 편 기획기사에서 계속된다.

 

영상편집: 디지털콘텐츠국
기사:  백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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